[책이 있는 토크쇼]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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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21세기 과학은 이제 인간복제.유전자조작과 같이 인간 존재의 개념까지 뒤흔들고 있다. 윤리.종교적 논란이 달아오르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간배아 연구문제를 놓고 '생명윤리기본법'을 만들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신간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최재천 엮음, 궁리,1만3천원)는 그런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다.

국내 자연과학자들은 물론 철학.종교.사회학 분야의 인문학자들이 현대과학과 윤리간의 관계 및 미래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멍석을 펼친 것이다. 공동 집필자인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와 이봉재(서울산업대 인문학부)교수는 "우리가 선택하는 윤리가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려면 과학과 종교가 함께 일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는 과학과 종교에 고루 달려 있다"는 세계적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말로써 다시 한번 학계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이 책의 글들은 상당수가 서울대 자연과학대 소식지에 특집으로 실렸던 것이라고 했는데,필자들을 보면 다른 분야 학자들이 더 많아 눈길을 끈다.

▶최재천=자연과학도들에게 인문학적 시각을 접할 기회를 더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과학기술은 그 엄청난 파급효과로 인해 그 연구결과의 윤리.종교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마다 윤리적 논쟁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스스로 인문학적 소양을 늘려 자신을 구속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인간복제와 같은 사안에 대한 종교적 입장이라도 기독교.가톨릭.불교.유교 등 다양한 비판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견해가 판이한 글들도 있어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싶다.

▶최재천=대화를 시작하려면 먼저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 책으로 내기 전에 필자들을 모아 논의를 정리해보는 것도 좋았겠지만, 아직 우리 학계의 수준은 이런 주제에 관해 합의까지 도출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봉재=이 책의 일차적 가치는 '소통'에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과학은 지적 사유의 주제로 익숙하지 않다. 이 책은 현재 가능한 소통의 방식.수준.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사회=사실 요즘엔 현대 과학에 대해 비판하지 않으면 지성인이 아닌 것 같다. 원자폭탄이 촉발시킨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 논란은 서양 근대성 전체에 대한 심각한 회의로 이어지며 20세기 말 이후 세계 지식인 사회 논쟁의 핵심주제로 자리잡았다.

▶이봉재=과학이 너무 강대해졌기 때문에 위험의 가능성도 커졌고, 특히 상업주의와 연결되면서 과학 비판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의 격렬함.급박함에 밀려서 과학이라는 것의 근본적 가치를 망각해선 안된다. 과학이란 가장 개방적인 사유다. 모든 비판의 가능성에 대해 열린 생각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이 과학이다. 그것이야말로 근대성의 상징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모습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과학이 아닌 '과학기술'만 수입돼 거의 경제개발의 수단으로만 발전돼 왔다.

▶사회=요즘 사회 이슈인 인간배아복제 얘기를 해보자.

▶최재천=과학자, 아니 인류의 호기심이란 결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왕 누군가가 열 판도라의 상자라면 여럿이 같이 지켜보는 가운데 과학자들이 조심스럽게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개발된 기술이라면 우리도 갖고 있는 게 현명하다.

▶사회=연구는 해야 한다는 말인가?

▶최재천=그렇다. 대신 과학자.윤리학자.종교인 등이 한자리에 모여 그것의 개발.사용 방법에 대해 새로운 윤리기준을 논의해 만들자는 것이다.

▶사회=사람들은 대개 윤리란 불변의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최재천=사회가 있기 때문에 윤리가 생긴 것이다. 즉 과학의 힘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생기면 그에 따라 새로운 윤리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봉재=맞다. 그건 과학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합리화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윤리기준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의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최소한 숨가쁘게 달려가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잠시 숨을 고르고 되돌아보게 할 시간을 준다는 의미가 있다.

▶사회=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간극을 메울, 보다 기본적인 실천방안은 무엇이겠는가.

▶이봉재=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

▶최재천=우리나라는 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해 상호이해를 막고 있다. 대학에서도 상호교류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사회.정리=김정수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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