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친엄마 만나야 한다" 눈물의 발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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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잊고 지냈다. 아니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피는 끈끈했고, 운명처럼 태권도가 그녀를 어머니에게로 인도해 주었다.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노르웨이로 입양됐던 입양아가 태권도를 통해 어머니도 만나고, 고국에서 벌어진 세계태권도선수권에서 메달도 따냈다.

7일 끝난 제주 세계태권도대회 여자 웰터급에서 동메달을 딴 노르웨이의 니나 솔헤임(22.사진). 지난 5일 웰터급 준결승에서 한국의 김혜미에게 아깝게 역전패한 후 눈물을 흘렸던 솔헤임은 "솔직히 메달을 따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그러나 멀리서 어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큰 용기가 됐다"고 말했다.

솔헤임은 "지난 6월 춘천 국제태권도대회에 참가했을 때 21년 만에 친어머니를 만나 이틀간 함께 지냈다"고 털어놓았다.

니나는 쌍둥이다.동생 모나와 함께 마산에서 태어난 니나는 생후 9개월째 동생과 함께 노르웨이로 입양됐다.노란 얼굴색과 검은 머리, 그리고 검은 눈동자. 니나와 모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옐로"라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도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안아주기만 했다.

니나가 여덟살이 됐을 때 고등학교 교사인 양아버지 에밀 솔헤임(62)과 간호사인 양어머니 글래디스(56)가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너희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 친어머니가 살고 있다. 친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워 너희들을 키울 수 없었고 우리가 대신 너희의 부모가 됐다. 자식이 없는 우리에게 너흰 하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가슴에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한두살씩 먹어가면서 니나는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자신을 낳은 부모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흔들렸다.

열살 때 양아버지는 니나를 태권도장에 데려갔다. "한국은 태권도의 나라다. 한국을 알고 싶다면 태권도를 배워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힘들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문득 '태권도를 잘 하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섯살에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뽑힌 니나는 지난 6월 마침내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르웨이 '입양아 센터'를 통해 친어머니를 수소문한 결과 친어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분명 그리움은 아니었다. 원망도 없었다. 다만 두 딸을 버린 게 늘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를 어머니에게 '걱정마세요. 이렇게 잘 컸어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춘천에서 친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니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지만 니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멍했어요.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다만 내가 왜 이토록 태권도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어요."

말은 안 통했지만 21년 만에 상봉한 모녀는 그렇게 춘천에서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 제주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니나가 e-메일로 어머니께 연락을 하자 답장이 왔다. "엄마는 네가 누구보다 자랑스럽구나. 열심히 하렴."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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