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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칼럼]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다(1)

중앙일보

입력

클레오파트라는 서양의 대표적인 백색 미인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 한무제 때 음악을 관장하는 벼슬로 협률도위로 있던 이연년이 지은 시에서 비롯되었다.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다”

동양의 양귀비와 함께 서양의 경국지색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말은 당시 합리주의 철학자 파스칼이 한 말이다.

“나로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 그 하찮은 것이 모든 땅덩어리를, 황후들을, 모든 군대를,
온 세계를 흔들어 움직이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그러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가 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그만 낮았다면 세상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 하는데 뭐가 어떻게 바뀌었을 거라는 이야기인가?

클레오파트라는 동양의 양귀비와 함께 서양의 대표적인 미인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란 그녀의 미모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또한 여성에게 코는 자존심의 표현이다.

사족을 달자면 클레오파트라가 약간 덜 미인이고 자존심도 좀 죽였다면 세상의 역사가 다르게 진행됐을 거라는 이야기다.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매혹된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 한판 대결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고대 막바지 지중해 세계의 판도는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또 그렇다면 로마제국의 역사도 달라졌을 거고, 따라서 유럽의 역사도 크게 변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파스칼, 클레오파트라 코에서 수학이론을 도출하려고

철학자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미색이 정치와 역사에 미친 영향을 수학적 도식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파스칼이 철학자다운 통찰력으로 매우 사소한 현상일 수 있는 한 여인의 미모가 결국 국제정세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그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파스칼은 고대의 미인 클레오파트라를 흠모해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을까? 물론 그도 남자이기 때문에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당시 데카르트와 함께 합리주의 표상이었다. 합리주의 철학이란 수학적 사고로 철학을 하자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1+1은 정확히 2다. 철학적으로 보면 1+1은 10도 되고 1,000도 되고 무한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합리주의 철학은 2외에는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에서 수학적 공식을 도출하고 싶었다. 그녀의 코가 일으킨 정치적 역사적 파장이 수학적으로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가 파스칼이 원하는 목적이었다.

그는 적어도 문학적 감성이나 로맨스로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언급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근대적 확률론을 수립한 냉철한 그에게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아름다운 여자의 표상이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수학적으로 클레오파트라라는 원인(cause)이 어떠한 결과(effect)를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클레오파트라 코의 이론(Cleopatra’s nose theory)을 만들고 싶었다.

나이도 그녀를 시들게 할 수는 없었다.
비록 의상이 진부할지라도
다른 여인들은 충족된 욕망에 쉽게 만족하나
그녀의 무한한 변화는 그녀를 가장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곳에서도
항상 그녀를 허기지게 만든다. -세익스피어

파스칼은 이런 생각과는 전혀 다른 철학자였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 로맨스적 사고는 전혀 없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역사에 미친 영향을 수학적 도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클레오파트라의 DNA를 설명하기 앞서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위대하게 만든 파스칼의 수학을 잠깐 짚고 넘어가자.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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