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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대로 좋은가] 上. 순수예술 인프라 취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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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요즘들어 게임.애니메이션 등 이른바 문화산업의 영역이 우리 전체 문화정책의 총아처럼 각광 받고 있다.

쉽게 이해하자면 '돈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의 내년도 예산책정에서도 문화산업 분야는 2.7%포인트가 늘어났고 정보통신부로부터 끌어 온 정보화촉진기금 1천억원도 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류'의 해외진출에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순수예술 분야의 관계자들은 불만이다.상대적으로 소외당하는 기분인데다, 기술적 발전으로만 우리 문화산업이 발전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한 순수예술쪽의 반응과 정책당국자의 입장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우물은 말라 가는데 물을 사용하는 기술만 개발하면 뭘 하겠다는 얘긴지 모르겠다."

문화예술 경영을 전공하는 한 교수가 요즘 문화산업 붐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다.한 마디로 순수예술의 기반은 취약하기만 한데 이를 개발할 기술분야에만 너무 공을 들인다는 지적이다.

문화컨설팅사업을 하는 메타의 이승훈 기획실장은 "요즘 들어서 문화관광부의 정책적인 중점이 문화산업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눈에 띈다"며 "우리는 아직 문화적으로 볼 때 자원이 부족한 빈국에 해당하고 따라서 급격하게 산업쪽만을 키우는 정책은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내지는 상업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정부정책의 입장은 예술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선 공연기관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다 보니 지난해 예술의전당 재정자립도가 70%를 넘어섰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라는 지적이다.

표가 잘 팔리는 작품만을 끌어다 무대에 세우다 보면 단순한 전시장, 또는 극장대여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산업도 좋지만 아직은 순수예술의 인프라구축에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의 정재옥대표는 "공연예술 육성을 위해 정부가 무대예술 지원금을 많이 뿌렸지만 아직은 기초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이 나서서 공연예술 정보지 등을 무료로 인쇄해 배포하는 등의 배려가 아직 너무 아쉬운 상태"라고 말했다.

문화부의 내년 예산을 들여다 보면 산업분야는 17.9%,문예진흥 분야는 47.4%로 아직은 예술쪽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문예진흥 예산의 대부분이 실효성 없는 시설에 대한 지원금 등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순수예술을 진흥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해왔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들이 아울러 지적하는 문제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매년 예술 관련 대학졸업자 2만명 이상을 양산하는 교육시스템의 문제, 이로 인해 예술의 질이 저하되고 국내의 예술 소비자들에게는 감동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구조 등이 악순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산업과 그 내용을 채워줄 순수예술의 이른바 '콘텐츠'를 서로 연결하는 작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양쪽의 특성이 서로 만나 발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업계도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기획과 시나리오 작성, 제작, 홍보.판매를 모두 맡아서 할 수 있는 업체는 전체 3백개 가운데 3개뿐이라는 설명이다.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업체들이 그 영상을 뒷받침해 줄 미술분야의 인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고 고품질의 배경음악을 만들기 위한 음악 인력들을 끌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추계예술대학원의 박은실 교수는 "순수예술을 지원하기 위한 문예진흥기금 등 각종 지원금은 소액다건(少額多件)이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은 이미 판명난 상태"라며 "예술을 공급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층이 빈약한 상태에서 문화산업이라는 응용분야만을 강조하다 보면 본말이 전도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마디로 순수예술 분야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얘기들이다.메타의 이승훈 실장은 "예술진흥의 문제는 복합적인 구조가 서로 엉켜 있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산업쪽을 진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원재료에 해당하는 순수문화예술과 균형을 맞춰가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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