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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2교시 교련 끝나면 텅 비었던 양은도시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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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노란색 양은 도시락에는 역시 뗑뗑이 무늬 손수건이 어울린다. 반찬 국물이 흘러도 흡수가 잘 되고 빨면 금방 말라 어머니들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테이크아웃’ 도시락이 대세라고? 아니다. 도시락을 싸는 순간부터 나들이의 즐거움은 시작된다. 그러면 김밥을 싸가나? 그것도 아니다.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도시락 싸는 것도 놀이가 된다. 그래서 준비했다. 즐거운 도시락 싸기. 먼저 입시준비에 바쁘거나 대학생이어서 더 이상 함께 놀아주지 않는 자녀들이 있는 7080세대의 부부에게 권하는 도시락. 옛날에 책가방에 넣어 다니던 추억의 도시락을 싸서 인근 공원으로라도 부부끼리 소풍 한번 나가보심이 어떨까.

옛날 도시락 반찬의 추억과 함께 어떻게 만드는지 헷갈리는 반찬 만드는 법도 알아봤다. 서울 월곡동에서 옛날식 반찬가게를 하는 이정란(54) 아주머니가 옛날 도시락 반찬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분홍 소시지 계란 부침

“점심시간이면 소시지 반찬 빨리 먹기 쟁탈전이 벌어졌다. 꼭 안 싸온 녀석이 더 먹는 게 얄미워서였다. 요즘 술집에서 ‘깜짝 안주’로 나올 때가 있다. 지금은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히 빨리 먹게 된다.” 이도화(40·파이낸셜 컨설턴트)

계란 프라이

“어머니는 혹시라도 책가방 안에서 노른자가 터져 물이 흐를까 봐 계란 노른자는 꼭 완숙으로 부쳐주셨다. 눈치 없는 친구들한테 뺏길까 봐 밥 밑에 깔아서 싸준 적도 있다.” 권성기(43·자영업)

볶은 김치

“어머니께서는 초봄이면 볶은 김치를 도시락 반찬으로 주로 싸주셨다. 겨울 김장김치가 시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김치볶음을 해도 그 새콤한 맛이 안 난다. 옛날만큼 푹 신 김치가 없어서일까.” 엄효용(40·사진가)

만드는 법 신 김치를 구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센 불에서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김치를 볶는다. 설탕과 다진 마늘을 넣고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자작하게 졸인다.

멸치 꽈리고추볶음

“씹을수록 짭쪼름한 멸치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차갑게 식어서 달달한 맛이 나는 계란말이랑 함께 먹으면 궁합이 잘 맞았다. 그런데 왜 꽈리고추를 넣었는지는 이해가 안 간다. 물컹하기만 한 고추가 난 정말 싫었다.” 서정원(37· 웹디자이너)

만드는 법 진간장 2숟가락에 설탕·물엿을 각각 반 숟가락씩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볶음용 멸치와 고추를 넣고 센 불에서 먼저 볶는다. 빈 프라이팬에 양념장과 다진 마늘을 넣고 중불에서 끓인다. 불을 줄인 후 먼저 볶아둔 멸치와 고추를 넣고 살짝 졸인다.

콩자반

“옛날엔 콩자반 반찬이 너무 싫었다. 무엇보다 ‘가난한 반찬’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피하고 싶었다.” 김수연(41·여행 가이드)

만드는 법 검은콩을 3~4시간 정도 물에 불린 후 푹 삶아낸다. 냄비에 콩이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진간장을 3숟가락 정도 섞어 중불에서 끓인다. 콩이 말랑말랑해졌을 때 물엿을 조금 넣는다. 물이 반 정도 줄 때까지 중불에서 졸인다.

무말랭이

“맵고 짜고 단맛이 골고루 밴 무말랭이 서너 조각이면 밥 한 숟가락을 너끈히 먹었다. 그런데 요즘 백화점에서 사온 무말랭이는 왜 그 맛이 안 날까” 임병권(39·쇼핑몰 운영자)

만드는 법 마른 무말랭이를 1시간 정도 물에 불린 후 물기를 꼭 짠다. 진간장과 젖국을 3대1 비율로 섞어 무말랭이와 함께 버무린다. 밑간이 충분히 뱄다 싶을 때 고춧가루와 다진 파·마늘과 물엿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장조림

“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니가 도시락을 싸주셨다. 특히 매운 고추를 넣고 끓인 장조림은 정말 맛있었다. 할머니는 고기를 잘게 찢어서 국물과 함께 병에 담아주셨다. 이 기억대로 여러 번 장조림을 만들어 봤다. 하지만 그때 할머니의 손맛은 복원할 수가 없다.” 김윤경(35·대학원생)

만드는 법 쇠고기(사태 또는 홍두깨살)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냄비에 고기가 푹 잠길 만큼의 물을 부은 뒤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삶는다. 이때 대파를 넣고 끓인다. 고기가 말랑말랑해지면 불을 끄고, 고기 삶은 물을 고운 체에 한 번 걸러서 찌꺼기를 걸러낸다.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몇 조각 찢어 놓는다. 체에 거른 물에 고기·진간장·설탕을 넣고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푹 끓인다. 불을 끄기 5~7분 전에 계란 또는 메추리알을 넣고 함께 삶는다.

“점심시간까지 김의 바삭함이 유지되도록 은박지로 따로 싸서 다녔다. 어쩌다 비닐에 담아간 날에는 김이 눅눅해져서 맛이 없었다. 요즘 개별 포장 김은 언제나 바삭한데 왜 옛날처럼 고소하진 않은지.” 김용수(44·자영업)

만드는 법 날김 양쪽에 붓으로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골고루 펴 바르고 소금을 솔솔 뿌린다. 달군 프라이팬에서 김을 앞뒤로 굽는다.

‘추억의 도시락’을 파는 집

옛날식 도시락을 파는 곳이 있다. 노란색 양은 사각 도시락 한쪽에 분홍 소시지와 볶은 김치를 담고 밥 위에는 계란 프라이를 얹은 모습은 모두 같다.

별다방미스리 추억의 도시락뿐 아니라 전통 한과 등도 파는 복고풍 카페다. 5000원. 서울 인사동. 02-739-0939.

청담안 60가지 퓨전 안주를 파는 실내 포장마차다. 6000원. 서울 청담동. 02-541-6381.

추억 찾기 밤에 출출할 때 주문하면 좋을 김치도시락 배달 전문점이다. 5000원. 033-256-3866.


TIP  기억하시나요, 소시지 만화광고

“쳇 또 국물이 흘러서 엉망이네.” “봐, 나처럼 엄마보고 소시지 반찬으로 해달라면 되지 않아.” 도시락 반찬용 소시지의 장점을 말하는 이 대화는 고 신동우 화백의 만화광고 속 대사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신 화백이 소시지 광고용으로 그렸던 연재만화는 그때 그 시절 도시락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신 화백의 만화는 진주햄 홈페이지(www.jinjuham.co.kr)에 게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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