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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백악관 안주인’ 로라 부시, 미국 조지워싱턴대 강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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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6일 밤 7시30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조지워싱턴대학의 리스너 오디토리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63·사진)가 단정한 감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 나타나자 500여 명의 참석자는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이틀 전 자신의 회고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Spoken from the Heart)』를 출간한 로라는 이날 백악관을 떠난 뒤 처음으로 공개 강연을 가졌다. 스미소니언 협회 주최의 행사였다. 로라는 10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스럽게 털어놨다.

1976년 텍사스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던 로라는 워싱턴으로 날아와 텍사스주 연방 하원의원의 인터뷰에 응했다. 의원실에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이력서를 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라는 타자를 빠르게 치지 못해 떨어졌다. 로라는 “그때 취직이 됐으면 남편 조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텍사스로 돌아온 그는 친구 소개로 동갑내기 조지를 만나 77년 결혼했다. 당시 하원의원과 유엔대사 등을 지냈던 시아버지(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명성 때문에 “사람들은 ‘텍사스 주 최고의 전도유망한 총각과 늙은 하녀가 결혼한다’고 수군댔다”고 로라는 전했다.

결혼 1년 만에 남편 조지는 로라를 떨어뜨렸던 텍사스주 연방 하원의원의 후임 자리에 도전하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때 로라는 시어머니(바버라 부시)로부터 훗날 30년 동안 남편의 정치 후원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조언을 들었다. “바버라는 나에게 ‘조지가 연설을 마치고 오면 절대 연설 내용을 비판하지 말고 격려해 주라’고 말했다. 바버라는 아들인 조지에게 늘 ‘이번 연설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그게 조지에게 가족이 줄 수 있는 큰 힘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 부시는 낙선했다. 로라는 그러나 “선거에서 지는 것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래서 2000년 대통령 출마 때도 남편의 낙선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95년 조지가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하면서 그의 ‘퍼스트 레이디’ 생활이 시작됐다.

로라는 “백악관에서 요리를 직접 해본 적이 있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 수줍은 목소리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실 텍사스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부터 요리를 하지 않았다.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 책 보는 것도 아주 좋아하지만, 사실 요리를 잘 못한다. 뛰어난 요리사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도서관학 석사를 마치고 젊은 시절 사서로도 일했던 로라는 주지사 부인 시절부터 ‘북 페스티벌’을 열어 아이들의 책 읽기 독려에 나섰다. 2001년 9·11 테러 당일도 그는 미 의회를 방문해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에게 그 해 열릴 전국 ‘북 페스티벌’을 설명하던 참이었다. “경호원으로부터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비행기가 부딪쳤다는 보고를 받고 처음에 끔찍한 사고인 줄만 알았다. 몇 분 뒤에야 더 끔찍한 테러임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는 TV를 보지 말게 하라고 성명을 냈다”고 전했다.

로라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백악관에 있을 때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문맹 퇴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성은 배울 수 조차 없었던 그들의 삶을 보고 나서,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기회를 갖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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