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수능 전날까지 커닝 막으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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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 휴대전화 커닝 사건'가담자가 유난히 많은 것으로 확인된 광주광역시 C고 교장이 시험이 있기 전 두 차례에 걸쳐 커닝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커닝 주동 학생들이 공공연하게 동료 학생을 대상으로 모집에 나섰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 학교 홍모 교장은 수능 전날인 16일 3학년생 전체를 대상으로 방송을 통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실력대로 시험을 치러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홍 교장은 20일 본지 취재팀과의 통화에서도 "수능을 앞두고 교육청 홈페이지 등에서 휴대전화 입시 부정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아 부정행위를 하지 말고 실력껏 최선을 다하라는 뜻에서 그런 당부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교육청 홈페이지 등에는 '올해 수능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이루어질 것이므로 막아달라'는 제보가 잇따랐다.

그는 또 지난 8월 자습 중인 3학년생을 강당으로 불러 특별 훈화를 했다. 학생들은 홍 교장이 30분 넘게 부정행위를 하지 말 것을 학생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 학교 교감은 "우리 학교가 선후배 간에 끈끈하게 뭉친 것으로 알려진 편인데 학생들 간의 우정이 잘못된 쪽으로 변질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학교 최모군은 "다소 주먹깨나 쓰는 친구들이 '50만원이면 인생이 바뀐다'고 선전하고 다녔다"며 "아마 전교생이 사전에 수능 부정행위의 모의를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빈 교실 등에서 20~30명씩 모여 '커닝 회의'를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3학년 김모군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지난 9월 모의고사 때 휴대전화로 커닝을 시도했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고 인터넷에 올라 널리 알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사들도 이들 학생에게 "수능 때 커닝하면 자퇴하겠다"는 각서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학년 한 학생은 "학교에서 '일진'이라 불리는 선배가 커닝을 도와달라고 부탁해 개입하게 됐다"며 "힘으로 알아주는 선배여서 약간의 두려움은 갖고 있었으나 도우미 역할을 강요당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학생의 아버지는 "싸움 잘하는 선배가 연약한 아이에게 부탁하는 것이 강요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주장했다. 반면 커닝에 가담한 수험생은 "후배의 도움을 받았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이번 사건에 이 학교 학생들이 많이 연루된 것은 커닝 주동자들인 광주 C중 출신의 학생이 이 학교에 많이 진학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경찰 수사가 시작된 뒤 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3학년 교사들은 오전부터 취재진의 질문 세례를 받았고, 일부 교사는 자리를 비웠다.

마침 수능시험도 끝난 뒤여서 3학년 학생들은 오전에 한문 공부를 조금 하는 정도로 간단한 수업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에는 오전부터 신문.방송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K군의 담임 교사는 휴대전화를 끈 채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이번 일로 떨어진 학교의 명예를 회복하고 재학생과 교사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침통해 했다.

광주=천창환.김승현 기자

경찰, 수능 부정 고교생 6명 구속
- 내년부터 적발 땐 3년간 응시 제한 검토

'수능시험 휴대전화 커닝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 동부경찰서는 22일 광주 S고 이모(19)군 등 부정행위를 주동한 고교생 6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광주지법 이창한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들이 석방될 경우 미검자 100여명과 통모하는 등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고 범죄 사실이 중한 데다 사회적 파장이 커 영장을 발부한다"고 밝혔다. 이번 수능 부정행위 사건과 관련, 학생들이 구속되기는 처음이다. 또 경찰은 지금까지 이 사건에 모두 141명이 연루된 것을 확인하고 S고 김모(19)군 등 6명을 긴급 체포했다.

한편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이날 국회 교육위에서 "내년부터 수능에서 부정행위를 한 수험생은 이후 3년간 수능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수능에서 부정을 저질러도 해당 시험만 무효일 뿐 이듬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안 부총리는 이어 "수능 당일 경남 창원과 인천 시험장에서 한건씩 휴대전화 벨이 울려 감독관이 이를 적발해 해당 학생들을 퇴장시킨 뒤 0점 처리했다"며 "그러나 개인적 행위로 보여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장대석 기자,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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