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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골프뽈은 더블엑스텐이 좋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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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16면

최근 골프장 캐디와 지인으로부터 들은 에피소드 3제. 아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에피소드1=겉으로 봐도 심상찮은 외모의 사내들이 라운드에 나섰다. 깍두기 머리에 원색의 옷차림.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에 말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장타를 펑펑 날리자 보스처럼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10>

“아그야, 너 요즘 거리 좀 는 것 같다. 드라이버 존 넘으로 바꾼 거 아니냐.”
“형님, 아닙니다요. 드라이버는 그대로인디요. 제가 보기엔 뽈이 좋은 거 같습니다.”

“그래? 니가 쓰는 뽈이 뭔데 그라고 거리가 많이 난다냐.”
“아따 성님 그거 있잖습니까. ‘더블엑스텐’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사내의 골프볼에는 ‘XXIO’란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에피소드2=골프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 신무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웨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56도와 60도 웨지만으론 모자라 64도 웨지까지 등장했다. 거금을 들여 64도 웨지를 마련한 한 사나이는 신병기를 쓸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64도 웨지를 사용해 벙커에서 멋지게 탈출하는 꿈! 행운인지 불행인지 이 남자는 2번 홀 그린 주변의 벙커에 공을 빠뜨렸다. 후후후, 드디어 신무기를 꺼내들 시간이군. 남자는 캐디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언냐, 64도 웨지 좀 주라.”
자신만만한 남자의 품세로 봐서 그의 일행은 남자가 벙커에서 멋지게 탈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남자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보기 좋게 웨지를 휘둘렀다. “휙~” 하는 소리에 이어 “퍽”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일행이 보는 앞에서 남자는 벙커에 큰 대자로 뻗고 말았다. 64도 웨지로 힘차게 퍼 올린 공이 남자의 턱에 명중했기 때문이다. 일행 중 한 명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거참, 대단한 무기군 그래.”

#에피소드3=주말 골퍼의 옷차림과 클럽만 봐도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베테랑 캐디 A. 어느 날 예사롭지 않은 복장의 한 남자와 동반 라운드에 나섰다. 이 남자의 복장을 살펴보자. 흰색 티셔츠에 분홍색 조끼. 여기에 분홍색 바지에 붉은색 계통의 모자를 맞춰 쓰는 센스까지-. 복장만 보면 프로골퍼 뺨칠 정도였다. 게다가 캐디백 역시 휘황찬란했다. 베테랑 캐디 A는 이 남자가 틀림없이 싱글 핸디캡 골퍼일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티오프. 1번 홀에 나선 남자는 보기 좋게 티샷을 했다. 그런데 ‘쪼로’가 나더니 공은 100야드를 못 가서 멈춰 섰다. 캐디는 아마 몸이 풀리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핀까지는 200야드가 넘는 거리가 남은 상황. 남자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7번 아이언 주세요.”
그때 아이언을 건네주던 캐디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이언 헤드와 손잡이 부분의 포장 비닐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비닐이 씌워진 채로 멋지게 샷을 했다. 그런데 2번 홀에서도, 3번 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번 아이언에도, 9번 아이언에도 포장 비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캐디는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저, 사실 제가 스크린은 좀 쳐봤지만 필드는 처음인데요. 클럽의 비닐을 벗겨야 하는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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