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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검사들, 수사 분위기 흐릴까봐 반지 안 낍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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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04면

커트머리 박 검사는 머리만큼 얘기를 시원시원하게 풀어갔다. 긴 생머리의 서 검사는 차 우려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웨이브 머리의 추 검사는 검찰 앵커 출신이다. 여검사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기사가 어떻게 나갈지 궁금해했다. 시기적으로 민감한 때여서 조심하는 눈치다.

대한민국 검찰 특수부 여검사, 그들이 사는 법

서지현 검사는 “최근 한 동료검사가 집에서 도둑을 맞았다는 기사에도 악플이 많이 달렸더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부산지검 검사 스폰서 관련 기사에 붙은 리플 중 이 사건 처리에 대한 ‘검찰의 4단계 예상 시나리오’를 적은 글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시나리오의 핵심은 진상조사를 하는 척하다가 결국 “수사 결과 특별한 징계나 처벌할 만한 게 없다”고 끝내버린다는 것이다.

여검사들에게 먼저 자신을 신세대 검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기존의 검찰 조직 문화에 대한 시각을 엿보기 위해서였다.

40세의 박지영 검사는 “신세대 검사가 아니다”고 답했다. “우리 세대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였다면 요즘 신세대는 남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 차이를 뛰어넘는 것 같다”고 했다.

36세의 서 검사와 34세의 추 검사는 “신세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서 검사는 “아직 구태의연한 생각에 물들어 있지 않으며 출세나 승진보다 일을 즐긴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답했다. 추 검사는 “초임 때 선배가 오라면 약속 깨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건 아니다. 가정도 중요하다. 구습에 젖어있는 선배는 후배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검사들의 경쟁력 중 하나는 한국적 정서와 환경상 지금 진상조사가 진행 중인 이른바 ‘스폰서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우리의 접대 문화라는 것이 남성 위주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어서다.

-검찰의 회식 문화가 다양해졌다고 하는데 실감하나.
(박 검사)“정말 많이 변했다. 요즘 검사들은 회식 자리에 누가 오는 걸 용인하지 않는다. 회식은 검찰 업무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외부인이 참석하면 그게 안 된다. 우리(서울동부지검) 부장님의 경우 1차는 감자탕 집이나 삼겹살 집, 2차는 검찰청 앞 호프집에 간다. 호프집에선 안주를 아무리 시켜도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추 검사)“한 달에 한 번 정도 부 회식을 한다. 두세 달에 한 번은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간다. 미술관에도 간다. 최근에 ‘라이어라이어’라는 연극을 소극장에서 같이 봤다. 잘 보이는 앞자리를 예약했는데 검사 선배들이 다들 덩치들이 커서 쪼그린 자세로 불편하게 봤다고 해서 미안했다. 연극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도 보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표가 비싸 포기했다. 티켓 값이 5만원이나 했다.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은 잘 안 마시려 한다. 다들 소주 있는 곳으로 간다. 선배들한테 배운 것도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음료수 하나라도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근데 놓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고맙다’며 케이크를 사오는 사람도 있다.”

(서 검사)“우리도 비슷하다.”

절에 갈 때면 자살한 피의자 명복 빌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뭔지를 물었다.

(박 검사)“2005년 인천지검에 근무할 때 수사했던 수도권매립지 폐기물 불법 처리 사건이다. 주민감시요원 15명 중 14명이 관련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한 사람만 돈을 받지 않았다. 금융계좌도 다 훑어봤는데 깨끗했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생각했다. 같은 해 밀렵사건 수사할 때 피의자가 사냥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고라니 몇 마리 밀렵한 사건인데 조사받은 다음날 구속영장을 쳤더니 수도권매립지로 가 차 안에서 자살했다. 차라리 수사 안 했으면 그런 일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자책도 했다. 항상 절에 가면 그 사람 명복을 빌게 된다.”

(추 검사)“지난해 8월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 수뢰 사건이 기억난다. 고소 사건을 수사하다가 기업가가 법조브로커와 수석전문위원에게 돈을 준 혐의를 포착했다. 수사 초기엔 몰랐는데 대단한 사람이었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일개 여검사가 뭘 할 수 있겠느냐. 할 테면 해 봐라’는 냉소적 태도를 보였다. 자기가 상대하는 건 장관이고 의원이라는 식이었다. 오기가 발동해 더 열심히 했다. 나는 출세를 포기해서 로비고 압력이고 하나도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00만원 뇌물수수 혐의였는데 나중에 뇌물액수가 1억2000만원으로 늘었다”.

(서 검사)“경찰관과 짜고 공갈을 친 조폭 대신 하위 조직원을 진범이라고 속인 ‘조폭 바꿔치기 사건’이다. 지난해 9월 관련 조폭의 아내가 조사를 받고 일주일 만에 조산을 했다. 아기 몸무게가 0.7㎏이라는 진단서를 떼 왔는데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너무 났다. 내가 수사를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기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다른 조폭은 다 구속했는데 아이 아버지인 조폭은 도주해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 아기를 살려 놓고 들어가겠다고. 나중에 그 아기가 3㎏ 정도 돼서 정상 퇴원했다는 얘길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검사는 정말 힘들다.”

아기 얘기를 할 때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하지만 서 검사는 대담 도중 자주 웃었다. 다른 사람은 가만있는데 별것 아닌 얘기에도 쉽게 웃음을 터뜨렸다.

“잘 웃어요. 선배들한테 직원들 있는 데서 웃지 좀 말라고 혼난 적도 있어요.”
서 검사는 술을 한 방울도 못하는 대신 차를 좋아한다. 7일 찾은 그의 사무실에는 27종의 차가 구비돼 있었다. 다기는 10여 년을 사용해 차심이 뚜렷이 보였다. 때로는 피의자에게도 차를 대접한다고 했다.

‘난 출세에 무관심, 로비도 압력도 안통해’
육아 문제에서 박 검사는 아이들이 다 커 홀가분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서 검사와 추 검사는 특수부 업무 때문에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검사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기르는 게 힘들지 않았나.
(박 검사)“애들이 초등학교 2, 3학년 딸 둘이다. 온 가족이 처음으로 같이 살기 시작한 게 올해 2월이다. 한마디로 ‘비참한 가정사’다. 검사 임관 때(2000년 2월) 서울중앙지검 소년부에 배치됐는데 사시 동기생인 신랑은 당시 법무관으로 광주에서 근무 중이었다. 첫 애를 광주에서 낳았는데 엄마가 키워 주셨다. 둘째는 순천에서 출산해 언니한테 맡겼다. 큰 애는 엄마, 둘째 딸은 언니, 신랑은 광주, 나는 서울에서 네 명이 다 각자 다른 집에 살았다. 요즘 2개월 정도 애들과 같이 살다 보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사 상황에 따라 퇴근 시간이 예측불허인 것이 가장 어렵다.”

(서 검사)“아들이 생후 21개월이다. 엄마가 안 계시고 시어머니도 몸이 아프셔서 입주 아주머니가 키운다. 애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중에는 10~30분에 불과해 항상 아이한테 미안하다. 매일 헤어질 때마다 아이가 운다. 집에 돌아오면 안 떨어지려고 한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힘들고 주말에는 애 보느라 힘들다. 특수부 여검사 생활은 불규칙적이다. 밖에서 술 먹고 늦게 귀가하는 가장과 비슷하다.”

(추 검사)“아이가 세 살이다. 친정에 맡겨두고 주말에만 데려온다. 최근 2개월 동안 서울시 교육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주말에도 못 보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에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다시 조사가 있어 청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요즘 검찰의 수사 여건이 나빠지지 않았나.
(박 검사)“3년 정도 법무부 검찰국 근무를 하고 돌아와 보니 피의자도, 고소인도 다 달라졌다. 옛날에는 검찰이 권위가 있었다. 자백을 많이 받았다. 요즘엔 아무도 자백을 하지 않는다. 수사받는 법을 아는 것 같다. 객관적인 물증 자료를 계속 수집해야 한다. 과거엔 압수수색 영장 받기도 편했다. 검찰에서 부르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나왔는데 요즘은 ‘바쁘다’ ‘왜 내가 나가야 하느냐’고 버틴다. 또 조금만 틀어지면 ‘언론에 폭로하겠다’거나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한다.”

(서 검사)“한 번은 조사에 불만을 품은 중년 여성 피의자가 ‘여검사가 욕설을 했다’고 진정을 내서 무척 억울해한 적이 있었다. 선배가 말하길 ‘검사는 원래 억울한 직업이야’라고 하더라.”

-여검사만의 장점이 있지 않나.
(박 검사)“피조사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조사하려고 노력한다. 그 덕에 상대방이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검사들이 더 독하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에 내가 구속한 사람인데 조사 과정에서 그 사람을 존중해 주고 말을 다 들어줬다. 구속되고 나자 ‘박 검사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고 했단다.”

(추 검사)“교육비리 사건 수사를 하는데 피의자들이 내 방에 오면 막 자백을 했다. 선배들이 ‘자백의 여왕’이라고 할 정도로…. 내가 피의자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검사가 당신한테 최고의 변호사다. 거짓말로 빠져나가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유리한 처분을 받아라.’”

(서 검사)“남자들은 대부분 인간관계가 수직적이다. 나이를 따지고 자주 ‘민증 까라’고 한다. 여자들은 수평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한다. 그게 힘인 것 같다. 형사부 때는 칼퇴근했지만 특수부로 오고 나서는 칼퇴근 못한다.”

-수사할 때 복장은 어떤가.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처럼 미니스커트를 입기도 하나.
(박 검사)“검사 프린세스를 보고 섭외를 했다면 나를 제외한 두 분은 잘 골랐다. 신세대니까. 나는 그 드라마 한 번도 못 봤다. 수사를 할 때는 간편한 정장을 입고 출근해 카디건으로 갈아입는다. 너무 여성성을 풍기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여검사 수가 증가하면서 많이 변했다. 여성성이 장점으로 부각되는 추세다.”

(서 검사)“한 번 봤다. 미니스커트 입었다가는 당장 부장님한테 불려갈 것 같다.”

(추 검사)“편한 재킷을 선호한다. 드라마는 말이 안 된다. 손에 반지를 그렇게 많이 끼고서는 일을 못 한다. 컴퓨터를 쓰고 서류를 봐야 하는데….”
이 대목에서 박 검사는 “우리 셋 다 결혼을 했는데 반지를 안 끼고 있는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건 수사 중에 반지를 보이면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선배는 가족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지 말라고 한다. 검찰청에 오는 사람들이 다 불행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이다.”

지갑 열자 모두 가족사진 먼저 나와
추 검사는 수사하다 보면 황당한 일도 많다고 했다. “만날 편지 보내서 사시 공부하는 방법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있고, 생선이 몸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검사와 재소자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거냐고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대담을 마치면서 현재 소지하고 있는 지갑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박 검사는 자줏빛 장지갑, 서 검사와 추 검사는 반지갑이었다. 세 사람 모두 가족사진이 먼저 나왔다. 박 검사의 지갑에는 현금이 제법 있었다. 어림잡아 100만원가량 돼보였다. 어버이날 용돈 등으로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추 검사도 70만~80만원 정도 있었다. 서 검사 지갑에는 5만원뿐이었다.

조직 안에서 여성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컬어 ‘유리천장’이라고 한다. 박 검사는 “승진의 장벽보다는 기회의 장벽이 있었던 것 같다”며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하면 유리천장의 막이 엷어질 것”이라고 했다. 서 검사는 “한 번은 부장검사가 다른 검사들 있는 데서 나한테만 ‘여자검사는 남자의 50%라고 생각한다. 너도 다른 검사의 50%다’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추 검사는 “교육비리 수사를 하면서 처음엔 걱정했다. 몇 개월간 고생해야 하는데 체력 좋은 남자 선배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해서였다. 수사팀의 막내라서 마지막까지 남아 수사 상황 쓰고 퇴근하기를 2개월여 했다. 그런데 되더라. 수사가 끝나고 몸살 감기 한 번 심하게 앓기는 했지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여검사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냥 ‘검사’다”라는 얘기로 대담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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