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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의 동갑내기 두 리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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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런 극명한 차이는 1942년생 동갑내기 양국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나라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정치를 펼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암이 갈리고 백성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2월 16일생)과 후진타오(胡錦濤·12월 21일생) 중국 국가주석의 인생 궤적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최고 학부인 김일성종합대학과 칭화(淸華)대학을 각각 졸업했다. 정치경제학을 전공해 선전과 이데올로기에 밝은 김 위원장과 달리 후 주석은 이공계 테크노크라트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80년대 초 두 사람은 비슷한 출발선에 섰다. 김 위원장은 80년 김일성의 세습 후계자로 낙점됐고, 후 주석은 능력을 인정받아 82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로 발탁됐다. 하지만 약 30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후 주석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을 실천했다. 배불리 먹는 원바오(溫飽) 숙원을 해결했고, 인본주의(以人爲本)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 세계의 사람과 돈이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했다. 당내 합의를 통해 후계자도 순조롭게 내정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어떤가. 교조적 통치 스타일을 고수할 뿐 제대로 된 개혁을 못하고 한국과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인민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먹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인민들은 “못 살겠다”며 북한을 탈출한다. 왕조 시대에나 가능했던 3대 세습을 강행할 태세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후 주석을 만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4년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하니 중국이 이룬 발전을 새롭게 이해하고 느꼈다”며 “인민의 생활 수준을 부단히 끌어올리는 것이 나의 핵심 임무”라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이 생전에 다시 중국을 방문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섯 번이나 방문했으니 중국이 왜 이렇게 발전했고, 북한이 왜 그렇게 낙후됐는지를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북한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김 위원장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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