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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뺨치는 '닛폰 필'맞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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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한 대형 백화점이 28일까지 진행하는 ‘일본 도시락 페어’(왼쪽·뉴시스)와 LG패션 ‘TGNT’광고(오른쪽).

서울 명동.신촌.압구정동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패션거리에선 티셔츠.원피스.재킷을 겹겹이 입은 젊은 여성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일명 '닛폰 필 패션'이다. 닛폰 필은 일본인들이 자국을 이르는 현지 발음 '닛폰'과 'feel'을 합성한 신조어로 일본의 최신 유행경향을 이르는 말이다. '닛폰필'은 오래전부터 일부 매니어층의 패션이었지만 이젠 젊은층 사이에 하나의 패션 경향으로 뜨고 있다.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며 '한류'열병을 앓는 사이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일본의 패션과 먹거리에 심취하는 '닛폰 필'이 퍼지고 있다. 이와 함께 백화점 식품매장과 거리 노점상에는 일본풍 음식을 파는 매대가 들어차고, 일본인 모델과 일본인 감독들이 일본식 감각으로 만드는 광고도 점차 영역을 확산해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젊은이들의 패션이다. 인터넷에서 일본풍 의류를 판매하는 송수정(35.여)씨는 "예전에는 일본 유행패션이 두 계절 정도 지나야 들어왔는데 월드컵 이후 그 속도가 확 빨라졌다"고 말했다. 패션 쇼핑몰 밀리오레의 경우 여성복 매장의 3분의 1 정도가 닛폰필 스타일의 매장이다. 옥션의 패션 카테고리에서 '일본' '닛폰' 등으로 검색할 수 있는 상품 수만 2100여건에 달한다. 미국 제품보다 두 배 많은 수치다.

명동 밀리오레의 닛폰필 매장 '모코모코'의 권오석 사장은 "최근 소비 침체로 의류 판매가 어려운 가운데 닛폰필 분야는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라고 말했다.

패션뿐 아니라 먹거리에도 '닛폰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7일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 식품매장에서 일본 화과자 명인 10여명을 초청해 과자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면서 판촉 활동을 벌였다. 이 백화점의 오형만 바이어는 "일본 식품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테이크아웃 상품이 잘 발달해 있어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만 일본 음식을 주제로 한 판촉 행사를 25회나 진행했다"고 말했다.

롯데.신세계 등 다른 주요 백화점도 올해 일본 특산품이나 식품 판촉행사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렸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델리존 코너는 아예 일본 매장을 벤치마킹해 매장 구성부터 일본풍이 물씬 풍긴다. 일본 포장마차의 인기메뉴인 '다코야키' 매장의 경우 7평 남짓한 매장에서 한달에 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이영재 영업본부장은 "백화점 식품매장은 할인점 때문에 매출이 위축됐던 것을 일본풍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됐다"며 "테이크아웃 음식을 중심으로 한 일본풍 음식 매장을 늘려가는 것이 백화점 식품매장의 추세"라고 말했다. '오코노미야키(일본식 빈대떡)','다코야키(문어빵)','가마보코(어묵 튀김)' 등은 대표적인 매대 음식. '라멘'(일본 라면) 포장마차도 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럽풍이 강세였던 베이커리 업계에도 일본풍이 거세다. '에구찌'와 '코핀느' 등은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대표적인 일본식 베이커리 브랜드로,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니어층이 형성돼 있다.

일본인 모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광고도 많아졌다. CJ의 인조이라이스데이 샴푸.비누 광고는 일본인 촬영감독이 일본인 모델을 기용해 일본 현지에서 만든 작품이다. 연상녀와 연하남의 연애 트렌드에 일본 광고의 색채를 가미해 여성층의 팬터지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르노삼성 SM3.던킨 도너츠.KT&G.OB큐팩.파리바게뜨.KB카드.ING생명.테이스터스 초이스.KTF 등의 광고에도 일본인 모델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업종의 광고에서 일본인 모델붐이 불고 있는 것이다.

정현목 기자

"개성있고 친근" 10.20대서 호감

"어려서부터 일본 만화를 봐서 일본 문화가 그렇게 이질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아요. 닛폰필을 따라하진 않지만 그냥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미숙(23.서울대)씨는 일본은 그냥 이웃 나라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민지(23.이화여대)씨는 "요즘 일본 문화 따라하기에 열광적인 중.고등학생이 많다"며 "그러나 이는 다른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만난 많은 젊은이는 일본을 더 이상 '반일' '항일' 등과 같은 역사적 단어와 연결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일본풍'이 일본 문화 개방에 따른 측면이 크지만,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의 왕성한 외국 문화 흡수 욕구에 있다고 분석한다. 전 세계 문화나 트렌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에 들어와 퍼지는 '문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일본 문화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국의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정서적으로 확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우리 사회에 부는 일본 문화 바람이 장기적으로 한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류와 한국에서의 일본 문화 열풍은 아시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문화교류가 시작되고 있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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