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회창총재 "재·보선 민심은 채찍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26일 의원총회에서 세 지역 재.보선 완승(完勝)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기쁨과 축하는 오늘 하루로 족하다"며 "정말 겸허한 마음으로 선거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은 이번 선거를 통해 국정 혼란을 초래한 정권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보냄과 동시에 야당에 대해선 결코 칭찬이 아니라 채찍질을 한 것"이라고 강조한 李총재는 "야당이 앞으로 국민의 기대에 어긋날 땐 가차없는 심판과 징벌의 채찍이 있을 수 있다"며 의원들의 마음가짐을 단속했다.

李총재는 이날 "대결보다는 협력으로 상생(相生)의 정치를 펴 나갈 것"이라며 자신의 슬로건인 '국민 우선 정치'구현에 매진할 것임을 다짐했다. 재.보선 승리로 원내 과반수(1백37석)의 턱밑에 이른 거대 야당(1백36석)을 이끌게 된 데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대여(對與)관계는 사생결단식으로 싸웠던 재.보선 전보다 훨씬 유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 실세들을 겨냥해 온 줄기찬 폭로 공세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李在五)총무는 "이제 투쟁 국면을 평화 국면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李총재는 대신 당력을 경제 안정과 민생 현안 해결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1조8천억원 규모의 2차 추경예산안과 내년도 예산안 심의, 감세(減稅)를 골자로 한 세법 개정 등 나라와 국민의 살림살이 쪽으로 관심을 옮길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여.야.정(與野政)경제협의체도 활발히 가동할 것이라고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은 밝혔다.

李총재는 그러나 선거에서 패배한 여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그의 한 측근은 "우리는 수(數)의 정치를 자제할 것이나 여권이 정계 개편 등을 통해 위기를 탈출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경우 힘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李총재는 이날 "자민련 의원 빼내오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밑에선 자민련 의원 서너명을 대상으로 한 영입작업을 은밀하게 추진 중인 것도 사실이어서 李총재의 유연한 대응자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다.

이상일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