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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원흉과 영웅 사이, 이토 히로부미를 다시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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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토 히로부미
이종각 지음
동아일보사
391쪽, 1만3000원

“경(卿)은 국가의 원로로서 혁혁한 훈공을 세워 그 이름이 일세에 풍미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근세의 4대 인걸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독일의 비스마르크, 청국의 리훙장 그리고 일본의 경(이토 히로부미)으로, 경이 지금 유일하게 생존해있다.”(228쪽)

1898년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훈장을 걸어주며 했던 말인데, 실로 굴욕적인 아첨으로 들린다. 9년 뒤인 1907년 이토는 그런 고종을 ‘뒷방 노인’로 밀어낸다. 순종과의 격리를 위해 덕수궁에 밀어넣다시피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은 실로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이토를 태자태사(太子太師), 즉 영친왕의 스승으로 모신 것이다. 예우는 친왕(親王), 즉 황제의 아들 급. 이 책의 저자의 말대로 나라를 삼키려는 인물에게 황족 예우까지 해주다니….

고종 황제의 일곱 째 아들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사진 오른쪽)이 1907년 유학이란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가기 전 당시 조선 초대 총감인 이토 히로부미와 찍은 사진. [중앙포토]

“외국인이 한국 황족이 된 일은 이토가 유일한 경우로, 한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275쪽)인데,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다. 실은 우리들은 각오했다. 책을 읽는 순간 저자가 예고했던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인정하건 하지 않건 이토는 거물 정치인이 분명했고, 올해로 100년을 맞는 한국합방의 설계자다. 그 이전 일본에선 메이지 유신에 공을 세운 인물이고 역량 또한 무시 못한다. 나이 44세에 일왕의 바로 아래인 초대 총리대신에 올랐던 게 대한제국에서 친왕 예우를 받기 20년 전이다. 이 책은 한일 강제합병의 주역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위한 책이다. 일부러 치켜세우지도, 내리 깎지도 않는다.

이토는 안중근에게 죽기 몇 해 전인 1901년 미국 예일대에서 명예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구에서 신흥국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본래 메이지 직전까지 그는 서양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한 왕정복고주의자였다. 시골 사무라이출신으로 암살 등 테러활동까지 서슴치 않던 그는 외국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잠재울 수 없어 갓 22세 때 영국으로 밀항을 떠났다. 밀항 시도만으로 목숨을 잃기 십상이던 당시 놀라운 결행이 분명했다.

하지만 런던대학에서 영어·수학·토목공학 등을 배운 6개월이 그의 삶을 모두 바꿔놓았다. 귀국 직후 개화론자로 돌아선 뒤 메이지유신 직후 천황의 신임을 얻으며 그는 승승장구했다.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사회의 변동까지 알려주는 이 책은 좀 더 치밀했더라면, 문장에 감칠 맛이 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나열식 정보 전달도 걸린다. 하지만, 용감한 시도임은 분명하다. 국내 독자들에게 심어진 ‘악한(惡漢) 이토’ 이미지를 뚫는 것은 부담이었으리라.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일본 주오대 겸임강사로 있는 그는 일본 언론 매체에 한일관계 칼럼을 쓰고 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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