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도 포기한 손자 효심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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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내가 못할 짓을 했구나."(할아버지)

"빨리 건강해지셔서 저와 오래오래 살아요."(손자)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

사흘 전 간이식 수술을 받은 고학사(高鶴士.57)씨가 손자의 손을 꼭 잡았다.

장손인 석규(晳糾.18.대진전자공예고3)군은 간경화 증세로 시한부 삶을 살던 高씨에게 선뜻 간의 일부를 떼어준 '은인'이다.

석규군은 이날 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수술 후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찾았다.

8년 전 처음 간경화 진단을 받았던 高씨는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했고, 지난 4월 병원으로부터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1년 내 생명이 위험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석규군은 바로 자신의 간을 떼내겠다고 자원했지만 곧 대학진학 시험을 앞두고 있던 터라 가족들이 만류했다. 대신 高씨의 두 아들과 딸이 간 검사를 받았으나 아들들은 지방간이 심하고, 딸은 간의 크기가 맞지 않아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석규군이 수술대에 올랐고 13시간이 걸린 대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능시험 응시는 내년으로 미뤘다. 병원측은 "세대를 뛰어넘어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이식해 주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맡았던 조재원(趙梓元)교수는 "정상적인 간은 재생력이 매우 뛰어나 절제 후 3개월이면 완전히 전과 같아진다"며 "손자와 할아버지의 나이차가 비교적 적어 시술의 어려움이 없었으며 조속한 회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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