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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 위기 2008년 금융 위기 닮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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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5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을 앞두고 물을 마시고 있다. 그는 이날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 연기에 질식해 3명이 사망하자 시위대를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아테네 AP·AFP=연합뉴스]

“그리스는 베어스턴스, 포르투갈은 리먼브러더스, 그리고 스페인은 AIG다.”프랑스 금융사 BNP파리바가 내놓은 해석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이 꼭 2008년 금융위기와 닮았다는 얘기다. 베어스턴스 도산은 금융위기의 전조였고,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금융위기의 시작이었고, AIG 파산은 위기의 절정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 15개국이 그리스에 1100억 유로(약 161조원)라는 유례없는 지원을 약속했는데도 위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국제 금융시장은 연일 출렁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사태가 재정문제에 그치지 않고, 유럽 은행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되는 이유와 향후 전망, 해법을 전문가 4명을 통해 긴급 점검했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거다.” 그리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한결같았다. 1100억 유로 규모의 천문학적 지원금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는 겨우 원리금 갚기도 빠듯할 것”(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비현실적인 긴축 계획”(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란 지적도 이어졌다.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보여준 ‘금 모으기’ 운동처럼 전국민이 단합해도 부족할 때 시위로 물든 그리스 경제는 마비 상태다. 강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원은 “그리스가 긴축안을 이행할 수 있을 거라고 시장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운영이 중단된 공항에서 한 남성이 결항된 노선표를 바라보는 모습. [아테네 AP·AFP=연합뉴스]

◆지원한다는데 계속 불안=그리스 위기의 본질은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약하다는 데 있다. 갑자기 보약을 먹는다고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강유덕 부연구원은 “재정적자 외에 고질적인 경제 문제가 얽혀 있어 하루아침에 개선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국가 부채를 해결해서 될 일이 아니란 설명이다. 그리스는 지하경제로 인해 취약해진 세수 기반, 공공부문의 과잉 인력, 지나치게 높은 사회보장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나라다.

한 방에 효과를 낼 만한 방법도 없다. 공동통화인 유로화에 묶여 있어 환율이나 금리 정책을 전혀 쓸 수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다.

그런데 그 긴축안이 오히려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있으니 문제다. 유승경 연구위원은 “그리스의 긴축안은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지키기 힘든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는 3년 동안 재정적자의 11%에 달하는 300억 유로 규모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지도 못하는 아이가 뛰겠다고 나선 셈이다. 과도한 긴축은 경제를 위축시켜 재정적자를 되레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유 연구위원은 “현실성 없는 긴축으로 IMF의 지원을 끌어들였다 나중에 실패해 IMF가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도 시장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미노 효과 우려=그리스 경제가 다른 유럽 국가들과 연계돼 있는 것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유 연구원은 “유럽의 은행들이 대부분 역내 교류에 의존하고 있어 연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면 유럽의 은행이 줄도산하면서 제2의 금융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로화의 하락과 유럽 경제에 대한 투자수요 감소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부메랑으로 그리스 경제로 돌아올 수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싸늘한 눈초리도 그리스에는 큰 부담이다. 유승경 연구위원은 “1992년 영국의 파운드화 위기 때처럼 금융자본이 그리스가 파산하는 쪽에 베팅함으로써 위기를 부추긴 면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회생 길은 어디에=전문가들은 대부분 그리스의 단기 회생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강유덕 부연구위원은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유로존에서 탈퇴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두 경우 모두 그리스와 유로존에 치러야 할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 은행은 그리스 채권의 80%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가 내부의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속적인 악재가 계속될 것”이라며 “다만 독일이 구제금융안을 승인할 경우 금융시장이 숨 고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미국의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중국 시장이 버팀목 역할을 해주면 국제시장이 안정되면서 반사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악의 경우 세계시장이 공조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김득갑 연구전문위원은 “국제사회가 공조해 채무를 탕감해 주는 방식도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우리 경제는 그리스 위기에 직접 노출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란 모세혈관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충격이 전해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강유덕 부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의 그리스 투자 비중은 0.7%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다만 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 등 그리스 국채 보유량이 많은 국가가 그리스 문제로 타격을 입을 경우 국내 금융계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문제가 악화되면서 대유럽 수출이 둔화될 수는 있지만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과 한국 등 출구전략에 영향을 미쳐 부동산 문제 등 다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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