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도 다 그랬다며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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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죄가 될 줄 몰랐어요."

20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부경찰서 수사과 사무실에서 J고 3년 김모(18)군이 수능시험 부정행위로 조사를 받다가 이렇게 후회했다.

김군이 커닝 유혹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초. 다른 반 친구(중학교 동창)인 박모군이 "네가 언어영역을 잘하고 내가 수리를 잘하니 서로 협력하자"고 제의해 온 것이다. "과목별로 잘하는 다른 학교 '선수'들도 참여한다" "선배들도 다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김군은 지난 모의고사 때 전교 3등을 한 상위권 학생이다. 목표도 서울의 유명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리 능력이 떨어져 고민해 오던 터라 쉽게 유혹에 넘어갔다고 한다.

이후 다른 학생들과 예행 연습에 들어갔다. 김군은 추진 비용으로 10만원을 냈다고 한다. 성적이 상위권이었기 때문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20만원, 50만원을 냈다고 한다. 반면 최상위권 아이는 공짜였다.

김군은 박군과 함께 수능 하루 전인 지난 16일 오후 2시 광주시 동구 산수동에 있는 게이트볼장으로 갔다. 다른 학교 학생 등 30~40명이 모여 있었다. 뚜껑이 없는 휴대전화로 최종 연습을 했다. 이날 김군은 집으로 돌아온 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죄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시험 당일 그는 송신용과 수신용으로 휴대전화 두 대를 가지고 고사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1교시 언어영역 시간 때 휴대전화를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답안을 보내야 하는 선수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그는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그는 1교시가 끝난 뒤 화장실에 가서 왼쪽 겨드랑이 사이에 테이프로 답안 수신용 휴대전화를 붙인 뒤 켠 채로 교실로 들어섰다. 휴대전화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긴장돼 답안을 제대로 받아쓸 수 없었고 끝내 커닝을 포기했다. 죄책감으로 다른 교시의 문제까지 제대로 풀 수 없었다.

수능이 모두 끝난 뒤 가채점해 본 결과 당초 예상보다 50~60점이나 낮은 400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경찰관에게 "원하는 대학에도 갈 수 없게 됐다. 한번만 용서해 주신다면…"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조사가 진행된 세시간 내내 곁에 있던 아버지(50)와 어머니의 눈길이 그를 더욱 후회스럽게 만들었다. "다 부모가 죄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못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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