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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신작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 선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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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원로 극작가 차범석(77.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씨가 올해로 극작 5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무대를 후배인 임영웅(65)씨가 연출하고, 또한 그 후배인 손숙(57)씨는 주연한다. 각각 극작.연출.배우로 치면 골수 리얼리즘파로 짜여진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현대 연극의 큰 산맥인 연출가 이해랑(1990년 작고)의 적자(嫡子)라고 할 수 있다.

희수(喜壽)에도 정정하고 꼿꼿한 차씨의 신작은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이다. 30일~11월 25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임씨 연극의 산실인 산울림은 흔히 '여성연극의 메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위기의 여자'(86년)'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91년)'딸에게 보내는 편지'(92년) 등 여성의 심리를 섬세한 터치로 묘사한 성공작들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그런 계보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손숙은 이미 그런 계열의 작품들,즉 '담배 피우는 여자''엄마, 안녕''그 여자' 등으로 박정자.윤석화와 함께 여성연극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앞에서 말한 여성연극의 대표작들은 대개 일인극 형태였다.

이번 작품은 다인극(多人劇)이다. 손숙을 중심으로 그와 갈등관계인 아들.딸이 있고, 여의사(예수정)도 등장한다. 더구나 금기의 사랑이라는 소재의 파격성은 '찻잔 속의 폭풍'같은 긴장감을 동반한다.

손숙이 맡은 주인공 윤정숙은 보험회사 외무사원으로 미망인이다. 종규(이찬영)와 윤미(전현아)라는 아비가 다른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종규는 첫 남편의 유복자이고, 윤미는 두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친자식이다. 특히 첫 남편에 대한 정숙의 그리움은 정상을 벗어난 비극적 사랑을 잉태한다.

마치 남편의 환영(幻影)같은 종규에게 모정의 도를 넘어선 사랑과 집착을 보이는 것.윤미는 그런 엄마를 질투하고, 아들은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워 도망치듯 군에 입대한다.결국 절망의 나락에서 정숙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한국의 '페드라'인 셈이다.

같은 성향의 연극동지였지만 임씨가 차씨의 작품을 연출하기는 30년 만의 일이다. 임씨는 71년 사실주의극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산불'을 연출했다.

당시 점례 역이 손숙이었다. 6.25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현재 신시뮤지컬컴퍼니가 뮤지컬로 준비 중이다. 이 또한 차씨의 '극작 50년'을 기념하는 헌정무대다.

차씨는 51년 '별은 밤마다'로 등단했으며, 이후 왕성한 집필력을 과시해 현재 그 누구도 그의 다작(多作)을 따를 수 없다.

그런 차씨도 이젠 '인생정리'의 단계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최근 그는 고향 목포에 있는 대불대에 애지중지 모은 장서 3천여권을 기증했다. 수십년 모은 연극 팸플릿은 산울림에 넘겼다. 그는 "쌓아 놓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 주는 기쁨도 크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 차씨는 "비록 사회적 금기이긴 하지만 원초적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며 "진지하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거기에는 리얼리즘 정통파인 임씨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깔려 있다. 임씨는 "기존 가족개념의 확대와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할 중년 여성의 삶을 밀도 있게 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연은 화.수.목.일 오후 3시, 금 오후 7시, 토 오후 3시.7시, 월 쉼. 02-334-5915.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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