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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신이 온다' 블랙코미디 묘미 보여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일본 영화계의 거장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감독의 '간장선생'(1998)은 군국주의에 함몰된 일본의 작은 어촌을 보여준다.

개인의 미력한 힘으론 감당하기 힘든 시대적 광기를 간염이란 질병을 내세워 통쾌하게 비웃었다. 역사의 부조리를 희화화하는 블랙 코미디의 묘미를 보여줬다.

이마무라 감독의 '간염'을 중국의 신예 감독 장원(姜文)에게 대입하면 '귀신'이 된다. 장원은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의 '붉은 수수밭'(87)에서 궁리(鞏□)의 상대역으로 나와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배우 출신. 중국 문화혁명 기간을 배경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의 일상을 그린 '햇빛 쏟아지는 날'(94)로 화려하게 감독 데뷔했다.

그가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 빚어낸 작품이 '귀신이 온다'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귀신이 온다'는 '간장선생'처럼 코미디다. 일본 제국주의가 마지막 기승을 부렸던 1945년 중국 북동부의 척박한 산악마을을 무대로 전쟁의 무모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너지는 인간성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귀신이 온다'에선 장대한 전투 장면도 잔인한 살인 장면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충격적인 화면으로 관객을 주눅늘게 하기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스꽝스런 상황으로 객석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럼에도 종반에 몰아치는 강력한 반전(反轉)으로 그 어떤 반전(反戰)영화에 비할 수 없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1945년 정월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순박한 촌부 마다산(장원)의 집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들어와 자루 두 개를 맡기고 간다. 마다산이 자루에서 발견한 것은 일본군 사병과 중국인 통역관. 침입자는 절대 일본군에게 신고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만약 신고하면 마을 사람 전체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카메라는 이들 '물건'을 접수한 마다산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을 쭉 따라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을을 지나가는 일본군에게 이들 포로들을 들키지 않도록 갖은 묘안을 짜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런 코믹한 분위기는 종반 30분간 철저하게 무너진다. 두 시간 이상 연속되던 흑백 필름이 최후 순간에 갑작스럽게 컬러로 변환하면서 주는 영상적 충격이 대단하다.

감독과 주연을 모두 해낸 장원의 역량이 주목된다. 특히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냉철한 시선이 돋보인다. 격변의 시대에 희생되는 민초들의 삶을 코믹하게 그리되, 절대 낭만적 세계관에 기대지 않는 장원의 현실인식이 때론 비정할 정도다. 15세 관람가. 26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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