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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살아나니 금강산이 금강산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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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남북 불교계의 공동 불사로 추진된 금강산 신계사가 20일 대웅보전 낙성식을 갖고 제 모습을 하나둘 찾아가운데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 등이 신계사 대웅보전 현판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서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금강산 경관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동안 우리는 무언가 아쉬움을 느껴왔습니다. 금강에 장안사.표훈사.유점사.신계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엄사 없는 지리산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비로소 자연과 문화, 인간이 어우러진 금강산의 제 모습을 찾게 됐습니다."

20일 오전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한 축사는 이날 행사의 의미를 압축하는 것이었다. 금강산 4대 명찰로 꼽혀왔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버린 신계사가 대웅보전 낙성을 첫발로 복원 불사(佛事)의 새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 입구 온정리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신계사 낙성식에는 한국 측 인사만 600여명이 참석, 행사의 비중을 가늠케 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산(원로회의 의장).법장(총무원장) 스님 등 스님 300여 명과 불교 신자들 외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봉조 통일부 차관, 김원웅.배기선 국회의원, 고은 시인, 동양철학자 김용옥씨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측에서는 내각 직속 문화보존지도국 최일남 처장과 차금철 조선불교도연맹 간부 등이 참석해 남북 공동의 문화재 복원과 종교 교류를 자축했다.

풍경 제막식 직전에 사회자는 "풍경 안에는 도올 김용옥씨가 남북경협에 몸을 바친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전 회장의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글씨를 새겨넣었다"고 밝혀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신계사 복원은 남북 합의에 따른 공동프로젝트.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된 2000년 이후 지표조사와 실행합의서 체결에 이어 착공(올 4월) 5개월 만에 1차로 대웅보전만 낙성됐다. 대웅보전은 실평수 28평. 다행히 일제시대의 사진이 남아 있어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의 기단과 대들보.주춧돌의 3분의 2가량은 그 터에 남아 있던 석재를 활용했다.

신계사 복원은 앞으로 4년 동안 한국 측이 내놓은 85억원의 예산과 기술로 해방 전 21개 동(棟)에 이르는 사찰 전체를 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당분간 신계사는 남북한 불자들의 신앙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으로보다는 금강산 관광코스의 하나로 각광받을 듯하다. 또 신계사는 남북한 공동의 문화재 복원과 통일 기원의 상징으로도 기능하게 된다. 이 절에는 한국 조계종에서 파견한 제정 스님이 거처하게 된다.

시인 고은씨는 "본디 신계사는 일제 때 효봉 큰스님이 출가했던 사찰이다. 그 위로 효봉의 은사는 호방했던 선풍을 자랑했던 석두 스님이어서 내게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효봉 스님은 일제시대 이 절을 거쳐 해방 이후에는 송광사에 주석했으며 4.19 직전까지 승려생활을 했던 고은씨는 효봉의 문하로 분류된다.

신계사는 6세기 초반에 세워진 고찰로 유서가 깊다. 신라 법흥왕 6년(519년)에 보운화상이 창건했고 이후 15세기가 넘도록 수많은 고승대덕이 법등(法燈)을 이어온 핵심 공간이다. 현재는 복원된 대웅보전 외에 북한에서 세운 돌비석 하나가 남아 있다. 비석에는 김일성이 1947년과 48년 두 차례 이곳을 방문해 국보적 가치가 큰 사찰임을 강조했다고 쓰여 있다.

금강산 =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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