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수능 부정 알려줘도 못 막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지난 17일 치러진 2005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찰 수사 결과로는 광주 지역 학생 100여명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같은 부정행위가 계속돼 왔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전에 익명 고발이 있었는데도 예방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교육당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수능시험 이틀 전인 지난 15일 한 네티즌이 광주광역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수능 커닝에 대해서'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예고하면서 그 수법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교육당국이 수험생들의 휴대전화 확인과 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충분히 차단할 수 있었다. 더구나 교육청은 수능 당일 부정행위 첩보를 입수한 경찰 조사까지 거부했으니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을 방치한 셈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시험 도중에 경찰이 수험생을 조사한다면 다른 수험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독이라도 제대로 했어야 옳다.

경찰은 이번 사건 연루 학생들이 9월 초부터 부정행위 방법을 준비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휴대전화기를 송신용과 수신용으로 구분하고 문자메시지 방식 외에 정답 번호 숫자만큼 전화기를 두드리는 수법으로 고시원 등에서 두 차례 예행연습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능시험 0점 처리와 함께 형사처벌 위기에 몰린 학생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끼리 준비했다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수법 등이 치밀하다. 따라서 전문조직이나 브로커 등 외부 세력의 개입은 없었는지,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정부는 이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려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수능시험 비중이 절대적인 대학 선발제도 전반에 대한 숙고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