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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누드모델, "모기가 가장 신경쓰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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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년차 누드모델 한우리(남, 29세, 가명)씨는 카메라 플래쉬가 아무리 터져도 예술인이 아닌 사람의 눈빛은 금방 감으로 알아본다. 행여 누드시연회 등의 행사에서 일반인과 눈빛이라도 마주치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고 한다. 요즘 말로 손발이 오그라든단다. 사람들의 눈빛을 겁내하는 누드모델 한우리씨를 지난 달 28일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나 봤다.

- 포즈를 잡고 있을 때, 숨도 안 쉬는 것 같다.
"일단 포즈를 잡으면 나는 정지돼 있는 하나의 화면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 눈도 그렇지만 마음도 한 점에 시선을 두고 거기만 쳐다보려 노력한다. 그 공간에서의 분위기를 느끼려 노력한다. 나는 공간에 예민한 편이다. 그 날의 몸상태, 스튜디오의 조명 등에 따라 달라진다. 포즈연습은 따로 안한다. 포즈를 머리 속에서 미리 상상하고 즉석에서 움직이면서 동작을 결정한다."

- 한 포즈를 오랫동안 잡고 있으면 힘든 점도 많겠다.
"크로키 누드모델의 경우 빠른 시간 안에 자세를 잡고 일정 시간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 큰 포즈를 잡아 쥐가 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참는다. 기타의 생리현상도 포즈를 잡을 때는 참는다. 포즈를 순간적으로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동작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속으로만 ‘큰일났다’고 후회한다. 하지만 일단 도화지 위에 펜이 움직이면 자세를 고칠 수는 없다."

- 어떤 모델을 주로 했나?
"누드모델과 함께 세미누드, 청바지 모델 활동을 해왔다."

- 직업병이 있나?
"누드모델은 세세하게 몸을 살펴야 하는 섬세한 일이다. 특히 맨몸일 때 예민해져 모기에게 물리면 신경이 쓰인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벌레에게 시달려서 여건이 안 갖춰져 있는 무대는 싫어한다."

- 무대에서 옷을 벗을 때와 입을 때의 차이가 있나?
"옷을 벗을 때는 ‘이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동작에 집중한다. 이제 저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정작 ‘이제 끝났습니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때부터 전투태세가 무너지며 부끄러워지기 시작해서 급하게 옷을 입는다. 벗을 때보다 입을 때가 더 부끄러운 셈이다."

- 돈은 얼마나 받나?
"20-30분 크로키 무대에 서는데 3만원을 받았다. 모델마다 차이가 난다. 사진모델의 경우 4-6시간을 촬영해 80만원 정도를 받는다. 사진 모델이 더 역동적이고 자세도 계속 고치기 때문에 수월한 것 같다."

한씨는 누드모델일은 일종의 '자기 몸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적은 페이를 받지만 내가 이런 선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예술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뚱뚱하든 말랐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모델의 입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옷을 벗으면 출근하고 입으면 퇴근하는 누드모델이다.

김정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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