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1. 중국동포 이대로 놔둘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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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술 시중 들면 어때요. 2만위안(3백만원)만 더 벌면 한국에 갈 수 있는데…."

지난 19일 밤 중국 베이징(北京)의 유흥가 뒷골목. 이곳 술집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金모(21.여)씨는 "밀입국하는 데 드는 5만위안을 벌기 위해 1년 넘게 돈을 모으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金씨는 지난 8일의 중국인 집단사망 같은 사고가 재발할 수 있고 한국 경찰의 단속이 강화돼 적발될 가능성도 있는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밀입국할 것이냐는 질문에 "반드시 한국에 가 돈을 벌겠다"고 말했다. 역시 베이징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李모(30.여)씨는 입국서류 위조단에게 7만위안을 준 상태다. 李씨는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조만간 위장 입국할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요즘 베이징 주재 한국영사관 안팎은 '코리안 드림'을 좇는 중국동포로 붐빈다. 이 영사관은 올 들어 9월까지 10만건이 넘는 비자를 내주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늘어난 수치다.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사람은 영사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브로커들을 만나 불법입국 가능성을 타진한다.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동포는 약 15만명. 최근 3년새 두배로 늘어났다. 이중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자다. 이들의 상당수는 밀입국하거나 위장입국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밀입국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중국에 비해 높은 임금을 좇아 한국행을 원하는 중국동포들이 많지만 합법적인 입국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동포들이 모여 사는 동북 3성에는 10여개의 밀입국 조직이 활동 중이다. 이와 관련한 사기 등 범죄와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밀입국한 중국동포들은 한국 속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우리 노동시장의 일부를 차지하고, 1999년부터는 그들의 범죄가 외국인 범죄 중 1위를 차지하는 등 우리 사회의 일부가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중국동포 정책을 재고할 때라고 강조한다. 동포1세 등 극히 제한적으로 비자를 발급하는 현재의 출입국 정책으로는 밀입국.장기 불법체류.인권문제 등 각종 부작용만 키우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무엇보다 중국동포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실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며 "현재 20% 미만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동포의 산업연수생 비율을 크게 확대하고, 출입국을 완화하는 쪽으로 법령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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