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순수'에 대한 정부의 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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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나두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두야 가련다//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뫼부리 모양/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사랑하던 사람들//버리고 가는 이도 못잊는 마음/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앞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박용철 '떠나 가는 배'중)

정부는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훈장 수여자를 선정했습니다.

작고 문인 중에는 김수영(金洙暎.1921~68)시인이 금관훈장, 박용철(朴龍喆.1904~38)시인이 은관훈장을 수상하는군요. 해방 직후부터 문필 활동을 펼친 김수영은 특히 4.19 이후 정치.사회적 상황에 예리한 관심을 기울이며 시인적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막힘없는 시와 시론을 펼치며 민족.민중문학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금 우리 문학의 '소수 집권 여당'이랄 수 있는 진보적 민족.민중문학의 태두로 떠받들여지는 김시인의 이번 수상은 시대적 흐름이 아니더라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박용철 시인의 수상은 또 다른 측면에서 시와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1930년대 용광로 같이 시뻘겋게 끓어오르는 순수시혼으로 이 땅의 순수시를 이끌다 '쫓겨가는 마음인들 못잊는 마음, 그리운 마음과 무어 다를거냐'며, 34세의 젊은 나이로 '나두야 간다'며 피안(彼岸)으로 대책 없이 떠난 시인이 박용철 아닙니까.

일제 치하에서 문인들이 편갈라 문학으로 어떻게 민족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조국과 민중의 해방을 가져올 것이냐며 문학을 무엇을 위한 도구로 여겼을 때 박시인은 문학을 문학예술 그 자체라 믿으며, 특히 언어와 형식을 갈고 닦으며 문학의 문학성.예술성을 지키는 데 힘썼습니다.

박시인은 특히 자비로 30년 시문학사를 설립하고 문예지 '시문학'등을 펴내며 정지용.김영랑 시인 등과 순수시 활동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시를 살로 새기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중략)우리의 시는 지나는 걸음에 슬쩍 읽어 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 시는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워지기를 바랄 뿐 가슴에 느낌이 있을 때 절로 읊어 나오고, 읊으면 느낌이 일어나야만 한다"고 박시인은 '시문학'창간호에서 말했습니다.

문학의 계몽성.계급성을 거부하고 문학의 인간성.예술성을 강조한 이런 박시인의 문학정신이 30년대 들어 우리 문학을 비로소 현대문학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인.평론가이면서 박용철은 무엇보다 가산을 흔쾌히 내놓으며 출판과 연극 등 한 시대 문화운동을 이끌고 후원한 사람입니다. 요즘도 문학에 대해 자신의 피와 살 같은 혈육의 정을 가진 재산가들이 문예지나 출판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얼마 못가 손을 떼고 있습니다.

심지어 좋았던 문예지를 인수해 경제논리로 형편없이 만들어놓고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 경제적 이득은 물론 계보를 만들어 시대와 역사의 이익을 구하지 않아 딱히 추종자도 없는 박용철 시인에게 문화훈장이 돌아간 것은 마음과 문학과 삶의 순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문화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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