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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토크쇼] 방귀에 불이 붙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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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과학동시'란 생소한 부제를 단 책『방귀에 불이 붙을까요?』(사석원 그림.김영사.6천9백원)의 저자는 취임 직후부터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영환(46) 과학기술부 장관이다.저명인사의 책이지만 그 그릇과 내용물이 신선하다.

아르키메데스.뉴턴 등 유명 과학자들부터 물고기.코뿔소 등 다양한 생명체들, 그리고 인공강우.월식.복제동물과 같은 일상 속의 과학적 소재들을 '어린이 상상력'의 언어로 그리고 있다.

기왕에 친교가 있던 사이인 그를 '섬진강 시인' 김용택(50)씨가 치켜세웠다.

"운동권, 의사, 국회의원,시인,장관,동시를 쓰는 아빠. 나는 이 중에서도 동시를 쓰는 아빠인 그를 제일 좋아한다"며 추천사를 써준 것이다.

내친 김에 전북 임실의 분교에서 정부 과천청사로 '토크 쇼 나들이'까지 했다. 이 시대 시인이라는 것의 의미, 지쳐가는 도회지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시심(詩心)의 즐거움을 나누는 길 등이 이들이 나눈 얘기들이다.

사회=학교 때문에 김용택 선생님이 오실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김용택=마침 오늘 아이들이 부여로 소풍을 가는 날이라 겨우 시간이 됐어. 지금쯤 아이들은 차 안에 있을 테니까 얼른 마치구 점심 전에 합류해야지. 그건 그렇구 시인들 모임 같은 데서 이 사람(김장관)을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번 동시집 참 좋더라구.

김영환=고맙습니다. 사실 요즘엔 책들도 안 사본다는데 동시랑 과학이랑, 그림 같이 안 팔리는 것들만 모아놔서 어떨까 싶습니다. 전 동시나 그림이란 게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도구고, 그 상상의 세계가 바로 과학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어서 한번 이렇게 엮어본 거거든요.과학 하면 아이들이 따분하게 생각하잖아요.

사회=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김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떻던가요□ 몇년 전 김장관께서 내신 첫 동시집 『똥 먹는 아빠』에 대해선 이오덕 선생께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호평하셨던데요.

김용택='아빠의 도둑질'이나 '고추와 지렁이'같은 건 아주 훌륭해요. 아이들의 새초롬한 표정 같은 게 그냥 떠오릅디다. 다른 시들도 어떤 건 짧은 에세이 같구, 어떤 건 소설 같구…. 대체로 잘 썼어요.(다음은 '아빠의 도둑질' 전문."요즘에는 아빠를 조심해야 한다/아빠가 동시를 쓰기 시작하면/아빠에게 우리는 동물원의 원숭이/눈빛이 이상해지고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쫑긋,/무엇보다 우리를 괴롭히는 일은/우리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이다/이제 아빠는 나이가 들어/동심이 없어져 그러니/이해를 해달라고 하시지만/이제 우리에게도 비밀이 참 많은데/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있는데/아빠가 동시를 그만 썼음 좋겠다./우리가 뭐 실험실의 모르모트인가/동심 때문에 우리가 동물이 되다니/도둑질하는 아빠는 정말 싫어")

사회='뇌 나라 국무회의'같은 것도 발상이 기발하더군요.

김용택=무엇보다 이 시집은 애들이 재미있게 읽겠더라구. 나만 해도 두 번이나 읽었는데, 추천사에도 썼지만 초등학교 교과서를 단번에 읽는 느낌이었거든. 내가 선생 아뇨. 학교에서 가르치고 선생님들이 맨날 하는 얘기들이더라구. 그런데 그걸 이렇게 재미있는 시로 보여주니 아이들이 안 좋아하겠어? 또 '복제 호랑이'같은 건 최첨단 과학 얘기에 '인간주의' 철학이 담겨 있거든.

김영환=제가 그래서 좀 억울합니다. 사람들은 현직 장관이 시집을 냈다고 하면 그것 자체로 화제를 삼거나 삐딱하게 보지, 작품에 대해선 얘기해주지 않으려고 한단 말예요. 누가 대신 써줬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실 옛날 과거를 볼 땐 시로 사람을 등용하지 않았습니까. 시를 통해 사람이 수양하고 자기계발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김용택=그렇지, 시를 모르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했었지.

김영환=정치인이 되고 보니 정책 아이디어를 낼 때도 문학적 상상력이 많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요. 그런데 이번엔 사람들이 할 일 많은 장관이 시집이나 냈다고 할까봐 좀 걱정도 되더라구요. 사실 시를 쓰지 않고는 못배기니까 쓰는 거거든요.

사회=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김선생님도 "시를 좇아다녀 본 적이 없다.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시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쓰여졌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깊더군요.

김용택=그래요, 삶이 쌓이면 저절로 시가 돼 나오는 거거든. 시인이란, '시적 눈'을 갖는다는 건,'온 세상을 자세히 보고 종합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얘기지.

사회=그런데 요즘 문학이 죽었다느니 하는 걸 보면 문학이 실제 생활에서 너무 동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김선생님도 이번에 안치환씨 같은 가수.작곡가들과 시노래 모음집을 내셨던데, 그것도 시를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접하도록 해주는 방법이 아닌가요.

김용택=정호승.도종환씨 같은 시인들이랑 백창우.안치환씨 같은 작곡가.가수들하구 '나팔꽃'이란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제비꽃 편지』(현대문학북스)라는 두번째 북CD를 냈지. 참,조금 있으면 우리 학교 아이들이 쓴 시들이랑 내 동시를 노래로 만든 게 나올 거야. 백창우씨가 작곡해줘서 보리출판사에서 CD랑 책을 하나로 묶어 지금 한참 만들고 있어.

사회=요즘 동요가 없어졌다고들 하는데 모처럼 좋은 동요집이 나오겠네요.찾아보면 우리 생활 속에 시나 문학을 살릴 방법들이 이렇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두 분 많이 고민해주십시오.

사회.정리=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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