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이슬람인을 빈 라덴과 동일시 말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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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구시 달서구 감삼동 선암시장 맞은편 골목에 있는 다르국제무역상사.

5∼6평의 좁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좌우 벽면 선반에 이름 모를 상품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무하마드 나딤 알리 다르(28)사장은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미소띤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대부분 식료품.한국인이 김치·된장찌개 없이 못 살듯이 파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인 등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 등이다.손님은 90% 이상이 이슬람문화권 사람들이다.

그는 “성서공단 ·3공단 근로자 등 대구 ·경북에 거주하는 파키스탄인만 줄잡아 2천여명이나 돼 가게 운영에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다르가 하는 또다른 일은 무역업.대구지역의 안경 ·컴퓨터 ·원단 등을 구매해 파키스탄에 보내면 형이 이를 파키스탄에서 다시 판다.대구의 주력상품을 파는 ‘수출역군’인 셈이다.

그가 이곳에 사무실겸 가게를 연 것은 1999년 7월.고교를 졸업한 뒤 형과 같이 무역업을 한 덕분에 1억원을 들여 입국 5개월 만에 사무실 ·물품을 갖췄다.

이곳은 이제 파키스탄인의 ‘쉼터’라는 또다른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국소식을 서로 나눌 수 있어서다.

“삼삼오오 모이면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반미시위가 일고 있는 고국을 걱정하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한국말을 곧잘하는 그가 전한 가게 분위기다.

전쟁 뒤 주한 파키스탄인들의 피해가 커졌다.고국에 가려면 전쟁 전에는 인천∼방콕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갔지만 지금은 인천∼싱가폴∼방글라데시∼파키스탄으로 우회해야 한다.그러다 보니 비행기 요금은 60만원에서 90만원으로 더 들고,경유시간도 하루에서 이틀로 늘어났다.

4개월 전 부산에 같은 사무실을 연 그는 “전쟁 뒤 대구 ·부산지역 제품은 운송비 추가 등 채산이 맞지 않아 한국인도 결국 전쟁 피해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 눌러앉을 작정이다.금융기관에 다니는 아내 이영숙(29)씨를 너무 사랑해서란다.송금 ·인출을 위해 자주 보게 된 것이 인연이 돼 사귄 지 15일 만인 지난해 3월 이씨와 결혼했다.

다르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어 고국의 부모로부터 쉽게 결혼 승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며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한국과 파키스탄에서 두번 결혼식을 한 이씨도 성실하고 착한 그를 무척 좋아하는 눈치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술·담배,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그는 하루 중 저녁에 한번은 꼭 기도를 한다.“파키스탄 부모에게 꾸중 들을 것 같지만 시간이 없어 자주 기도를 못한다”는 게 그의 변명.

“열심히 일해 대구와 파키스탄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그는 부탁도 서슴지 않았다.

“다섯 손가락의 길이가 모두 다르듯 이슬람인들도 좋고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이슬람인 모두를 오사마 빈 라덴과 동일시하지 말아 주세요.”

황선윤 기자

◇약력

▶1973년 파키스탄 젤럼 출생

▶91년 고향 젤럼서 고교 졸업

▶99년 2월 한국으로 입국

▶ 〃 7월 대구 다르국제무역상사 설립

▶2000년 3월 이영숙씨와 결혼

▶2001년 6월 부산 다르국제무역상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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