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정거래제도 전면개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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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테러 사태 이후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활로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작업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공정거래 제도와 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을 둘러싼 논의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출자총액 제한 완화 같은 개별 정책 현안부터 공정거래 제도의 근간을 뜯어고치는 방안까지 정부와 재계.학계.연구기관들간에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논의의 큰 흐름은 올해로 시행 20주년을 맞은 공정거래 제도가 그동안 불공정 거래를 시정하고 시장에 경쟁 기반을 만드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근본적인 개편이 불가피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변화한 기업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이제 '위험한 칼'이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본지가 집중 연재한 '공정위 대해부' 시리즈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견해나 지난 12일 열린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사단법인 한국산업조직학회 공동 주최의 세미나가 좋은 예다.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크고 작은 이견이 있으나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공정거래 제도와 공정위가 본연의 임무인 경쟁 촉진 기능 위주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당한 독과점과 기업결합.공동행위(담합) 등을 바로잡아 경쟁을 촉진시킴으로써 시장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시장 파수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정위가 치중하는 재벌 정책이나 약자 보호 등 제도의 본질이나 실효성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기능들은 다른 법령.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위가 불공정 경쟁을 감시.단속하는 사법적 업무보다 정책기능을 더 중시해 재벌.언론 규제 같은 정치적 기능까지 수행한다는 비판도 제시됐다.

우리는 정부가 공정거래 제도와 공정위를 둘러싼 이런 지적들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으로 옮겨줄 것을 촉구한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기업과 시장의 여건이 바뀐 지금 공정거래법도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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