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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첼리 노래의 비밀은 한국산 점자 컴퓨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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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시각장애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오른쪽)가 3일 자신의 점자 컴퓨터를 만든 힘스코리아 윤양택 대표를 만나 고마움을 전했다. [김현동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기자]

2일 60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내한공연을 마친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52)가 3일 오후 한국의 벤처사업가 한 명을 만났다. 보첼리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찾은 이는 힘스코리아의 윤양택(48) 대표. 두 사람은 서울 반포동의 한 호텔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힘스코리아는 보첼리가 쓰고 있는 점자 컴퓨터의 제조사다. 12세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는 2년 전부터 이 한국산 IT 제품을 사용해 왔다. 보첼리는 이 점자 컴퓨터를 늘 갖고 다니며 작사·작곡을 하고, e-메일과 문서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컴퓨터 기술이 내 삶을 바꿨다”며 윤 대표에게 고마워했다. “기계에 수많은 악보와 음악 등을 넣어 다니고 있어요. 오페라 공연을 준비할 때도 체계적이지 못한 기존의 점자 악보 대신 점자 컴퓨터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앨범 ‘비베레(Vivere)’에 들어간 ‘당신을 위해(Per Te)’를 비롯한 상당수 노래가 이 점자 컴퓨터로 만들어졌다. 보첼리는 “아직 대중 앞에 발표한 적은 없지만 요즘은 시를 많이 쓰고 있다. 주로 자연·친구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기록할 수 있는, 이 같은 장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또 “문자나 인스턴트 메시지에 익숙해 있는 두 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제품 덕분”이라고 말했다.

보첼리는 윤 대표에게 “사용할 때의 속도는 상당히 빠른데, 문제점이 개선되는 속도는 빠르지 못한 편이다. 자세한 사용설명이 같이 있었으면 한다”며 사용자로서 아쉬웠던 점도 전달했다. 이에 윤 대표는 “앞으로 이탈리아어 버전의 개발 우선순위를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힘스코리아는 2005년 이후 16개국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컴퓨터를 수출하고 있다. 보첼리가 “지난 10여 년 동안 썼던 제품들 중 가장 편하다”고 평가했다. 윤 대표는 “개발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힘들게 내놓은 제품”이라며 “시각장애인의 사정을 비장애인들이 상상만 하고 만들었던 탓에 2년간 개발했던 제품을 하나도 팔지 못한 때도 있었다”고 공개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직원을 채용하고, 투자를 늘린 끝에 만족할 만한 제품을 얻었다고 한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현동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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