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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1번, 변주곡 음반 선보인 백건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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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백건우씨는 3일 기자 간담회에서 “브람스의 성숙한 청년기를 보여주는 1번 협주곡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엘(L)자 모양의 방(The L-Shaped Room)’. 1962년 나온 영국 영화다. 당시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64)씨는 이 영화의 강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이끌렸다.

“당장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3일 기자 간담회에서 백씨는 “영화의 무대는 제목처럼 아주 좁은 방이었고, 주인공은 두 사람밖에 안 나왔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헤어지는 내용이었어요”라고 기억했다.

영화의 배경 음악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1, 2악장은 아주 강렬하면서도 기술적인데, 3악장에 이르면 마치 민속 음악처럼 자유로워지죠. 브람스가 19세에 작곡을 시작해 6~7년 만에 마친 곡이에요. 젊을 때 작품이지만 깊이를 보면 과연 브람스에게도 청년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죠.”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 녹음·연주로 2007년 산 하나를 넘은 백씨가 브람스를 선택한 이유다. 그는 “오랫동안 사랑해온 곡”이라며 1번 협주곡과 변주곡 두 곡을 녹음한 앨범을 3일 내놨다. 29일에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지휘 파보 예르비)과 브람스를 협연한다. ‘브람스 프로젝트’의 첫 걸음이다.

“3부로 구상하고 있어요. 협주곡, 변주곡 세 곡, 소품들이죠. 이미 인터메조(intermezzo·간주곡) 등 소품은 녹음을 마친 상태고, 협주곡 2번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완성해 볼 생각입니다.”

보통 1, 2번 협주곡을 한꺼번에 녹음하는 관례와 달리 그는 1번과 변주곡 두 곡을 함께 녹음했다. “쇼팽의 협주곡 1, 2번처럼 브람스도 두 곡을 같이 하는 피아니스트가 많죠. 하지만, 브람스의 협주곡은 두 곡이 모두 웅장하고 크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소화하기 힘들어요. 고전적인 형식이지만 낭만적인 내용이 많은 변주곡을 같이 녹음한 이유죠.”

영화를 보며 시작된 백씨의 브람스 사랑은 이처럼 40여 년의 기다림 끝에 완성된다. 그는 알려진 대로 소문난 영화광이다. 부인인 영화배우 윤정희(66)씨의 프랑스 칸 영화제에도 동행한다. “영화를 보며 어떻게 저렇게 연기에 빠질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인간 윤정희를 굉장히 비슷하게 표현한 영화 자체도 놀라웠죠. 연주자에게는 악보가 있어서 참고할 수 있지만 그런 것도 없는 영화인들, 참 대단해요.”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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