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남수 '서글픈 암유.2'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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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제 밤,꿈에

한 노승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모두 뱉아버려, 속이

텅 빌 때까지

이 말씀은 내가 몇번이고 들은

말씀 같기도 하고, 난생 처음 듣는

말씀 같기도 했다.아마 무슨 經이라는데

있는 것이겠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박남수(1918 ~1994)'서글픈 암유.2'중

박남수 선생은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뉴저지에서 타계했다. 50년대 춘조사(春潮社)에서 비중있는 시집들이 출간됐을 때 '갈매기 소묘'도 그 중 하나였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새'연작은 상승 지향적 의지가 도달한 관념의 절대세계(이혜원)였다.

이민 후 말년, 선생의 시는 노승에게 꾸지람 듣듯 속이 빌 때까지 언어를 솎아냈다. 상승 지향에서 추락하는 지팡이(죽음)를 남겼다. 한랭한 가지 끝 흔들리는 그림자 새가 되어….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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