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정위 대해부] 3. 소비자에 좋은것도 족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과당 경쟁'이란 경제학에 없는 개념이다.

흔히 쓰는 말이긴 해도, 경쟁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설령 시장에 문제가 있어도(시장 실패)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정부 실패).

그런데 경제를 잘 알고 경쟁을 촉진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별 개념 없이 하는 말이 '과당 경쟁'이다.

"과당 경쟁이 시장질서를 해치고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우리 공정위는 과거 '경품을 너무 많이 주면 안된다''광고를 너무 많이 하면 안된다''가격을 얼마 이상 올리면 안된다''시장점유율을 얼마로 맞춰라' 등등의 간섭과 규제를 당연한 듯 해오다 최근에야 하나 둘 그만두고 있다. 공정위가 나서서 거꾸로 경쟁을 제한하며 실제로는 소비자 이익을 해쳤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공정거래법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196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유명한 판결이다.

모든 나라의 공정위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이같은 철칙이 우리나라에선 그간 어떻게 지켜졌는지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자.

◇ 소비자에게 좋은 것도 규제=한때 맥주회사들이 뜨겁게 경쟁한 적이 있었다.하이트 맥주가 처음 나올 때다.맥주회사들은 가격을 내리고 길에서 공짜 맥주 시음회를 열며 대대적인 광고전을 펼쳤다.

이때 공정위가 개입했다."과당 경쟁.광고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니 각사 담당 임원들은 공정위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언론이 나섰다."공정위가 본분을 망각하고 기업에 부당한 지시를 한다."

결국 공정위는 개입을 포기했고 소비자들은 피해를 보기는커녕 "맥주도 경쟁을 하니 좋구나"라는 점을 알았다.

지금도 공정위가 시행하고 있는 경품 규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0만원짜리 물건을 산 소비자에겐 1만원 이상의 경품을 줄 수 없다.추첨으로 경품을 줄 때 1백만원이 넘는 것은 안된다.'

이에 대한 논리는 공정위 안에서조차 사람에 따라 다르다.

"경품은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을 기존 기업보다 불리하게 만든다."

"경품은 제품의 질이나 가격이 아닌 사행심을 통한 경쟁이므로 공정 경쟁이 아니다."

이에 대해 자유기업원 김정호 부원장은 "공정위는 자꾸 자기가 나서서 공급자 중 강자.약자를 가리려고 한다.공정위는 소비자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만을 판단기준으로 삼으면 족하다"고 점잖게 말한다.

"신문 끊기가 담배 끊기보다 더 어렵다."

지난 4월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신문고시를 부활시켜야 한다며 붙인 이같은 설명은 공정위의 본분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는 말이다.

신문을 계속 집어넣는 것에 대한 독자의 원성이 비록 높더라도 공정위가 이를 근거로 신문사 간의 경쟁을 '제한'해 독자가 경품.무가지를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소비자 판단도 제한=국내 기업들은 1999년까지는 자기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뭐가 나은지를 광고할 수 없었다.이 역시 공정위 규제였다.

비교 광고는 그해 7월 일부 허용되긴 했지만 무엇이 부당한 비교광고에 해당하는지 기준이 없어 제대로 된 비교광고를 하지 못했다.이 기준은 올해 8월에야 만들어졌다.

"우리 회사 차가 경쟁사 것보다 연비가 높다는 것을 광고하고 싶어도 그런 내용을 포함시킬 수가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공정위로부터 부당광고 판정을 받아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A자동차 임원)

◇ 경쟁 촉진도 못하면서 소비자만 피해=지난해 4월 공정위는 SK텔레콤(011)의 신세기통신(017) 인수를 승인하면서 "2001년 6월 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0% 미만으로 낮춰라.안하면 하루에 최고 11억여원씩 이행강제금을 물리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SK측은 011.017 신규고객이 와도 받지 않았다. 나아가 기존 고객들도 강제로 몰아냈다. SK는 아예 자기네 대리점에서 경쟁사 제품인 019를 팔도록 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 자체가 봉쇄됐던 셈이고 떨려나간 011.017 사용자가 1백75만명이나 됐다.

결국 SK텔레콤은 지난 6월 말 시장점유율을 50% 미만으로 맞춰냈다. 그러나 7월부터 점유율 규제라는 족쇄가 풀리자 시장점유율은 다시 50%를 넘어섰다. 소비자들이 새로 011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도 당시 결정을 옳았다고 우기진 않는다.

한 관계자는 "011이 017을 인수하면 독과점에 해당하므로 경쟁제한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공정위 입장이었다. 그러나 017이 부실하니 011이 인수해야만 한다는 정보통신부 입장을 고려해 그런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신광식 박사(전 한국개발연구원 법경제팀장)는 "경쟁을 제한한다고 판단했으면 승인하지 말든지,승인이 불가피했다면 이상한 조건을 붙이지 말든지 했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합쳐지면 경쟁이 줄어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공정당국은 기업결합을 까다롭게 심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1981년 이후 99년까지 모두 4천8백건의 기업결합이 있었지만, 공정위가 경쟁을 저해한다며 금지한 결합은 단 3건뿐이다.

◇ 관제(官製)독점은 방치=우리나라에선 취직할 때 받는 신원보증을 서울보증보험 한곳에서만 취급한다. 정부가 이 회사에만 허가했기 때문에 소비자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경쟁자가 없으니 보증보험료도 이 회사가 결정하면 그만이다.

지난해만 이 시장에서 3백32억원이란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손보사 관계자는 "뛰어들 생각은 굴뚝같지만 정부가 막고 있어서 엄두를 못낸다.왜 이런 독점은 방치하나"라고 항의한다.

신원보증시장 진입 허가권이야 금융감독위가 쥐고 있지만, 독점의 폐해를 살펴 시정하는 것은 공정위 몫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서울보증보험이 대우에 보증을 섰다가 물린 상태에서 그런 걸로 만만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안다. 독점의 폐해가 있는지 들여다봐야 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특별취재팀=김영욱 전문위원, 송상훈.이상렬.서경호 기자

<글 싣는 순서>

①기업활력 위축시키는 경쟁당국

②휘두르는 위험한 칼

③경쟁 막아 소비자 피해

④털어야 할 정치논리

⑤좌담-공정위, 거듭나 려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