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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초상화' 왜 뗐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제거된 사실이 본지가 입수한 북한 선전잡지 '조선'10월호를 통해 18일 확인됐다. 이 잡지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나란히 걸려 있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중 김정일 것만 사라져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북한을 방문했던 유럽연합(EU)대표단 관계자도 인민문화궁전의 다른 방에 김정일 초상화가 철거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4면 참조)을 본지에 보내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지난 9월 1일 인민문화궁전을 방문해 이 사진을 찍었다고 밝혔다.

◇7월호엔 있던 초상화가 10월호엔 사라져='조선' 7월호엔 인민문화궁전에 김정일 초상화가 김일성 초상화와 나란히 걸려 있는 사진(29쪽)이 나와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북한 적십자대회 행사를 찍은 것으로 이때만 해도 김정일 초상화는 건재했다. 하지만 지난 8월 4~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2차 세계조선학 대회'에선 김정일 초상화가 사라져 있음을 '조선' 10월호(6쪽)는 보여 주고 있다. 이 잡지는 북한이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화보 중심으로 꾸미는 월간지다. '조선'은 영어.중국어.러시아어판으로도 발행돼 배포된다.

◇"7월 이후 제거작업 착수"=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초상화가 철거돼 있는 사진을 찍은 EU 관계자는 "북한이 김일성 사망 10주기(7월 8일)가 지난 뒤부터 김정일 초상화 제거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몇몇 시설 위주로 철거작업을 조심스럽게 진행해 왔다고 이 관계자는 주장했다.

◇철거 이유는 뭘까=대북 정보 전문가는 "북한이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은 인민문화궁전 등 공공시설이나 특급호텔을 중심으로 철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일반 주민이 사는 가정이나 공장.기업소에서 김정일 초상화가 철거됐다는 첩보는 입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초상화 철거 이유와 관련,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일성이 오류가 없는 지도자로 주민에게 추앙을 받는다면 김정일은 신의주 특구와 2002년 7.1 경제조치 실패 등 경제실책, 북핵 위기로 인한 체제위기 고조 등으로 리더십에 다소 의심을 받고 있다"며 "김정일은 초상화를 내림으로써 신적인 통치자에서 현실적인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것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호칭 이상설=북한 뉴스 분석기관인 일본의 라디오프레스는 "북한 관영 언론들이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붙여온 '경애하는 지도자'란 수식어를 생략했다"고 18일 보도했다. 하지만 평양방송 등은 18일 김 위원장에 대해 다시 '경애하는'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 김정일을 찬양하는 수식어가 1200여개에 이르러 편의에 따라 넣거나 빼는 사례가 있다는 게 정보 당국의 설명이다. 고유환 교수는 "미 대선 이후 북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과민한 해석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정용수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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