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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한 명의] 권준수 서울대의대 교수 →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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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앞쪽 뇌 이상 … 심성이 나쁜것과 무관

‘아, 힘들고 아픈 엄마에겐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했구나….’ 그날, 소녀는 환자에겐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때부터 병원에 갈 때마다 매번 의사 선생님의 태도와 환자·보호자의 반응을 관찰한 소녀는 ‘환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란 결론에 도달한다. 소녀의 진로는 자연스레 의대로 정해졌고, 훗날 말썽꾸러기 자녀를 치료해 온 가족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소아청소년정신과 명의가 됐다. 이번 주 중앙일보는 주인공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정유숙(46) 교수를 소개한다.

“병을 방치해 아이를 오랜 세월 고통에 시달리게 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경우가 많아요. 병인지 몰라 결과적으로 병을 키운 셈이 된 겁니다. 부모와 아이가 병원을 찾을 때쯤이면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의 상처가 깊고 부모 역시 우울과 불안, 자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어머니들이 ‘아이 때문에 삶이 지옥’이라는 말을 합니다.”

“명의로 추천됐으니 자기 자랑 좀 하시라”는 기자의 요청에 정 교수는 자랑 대신 환자 이야기부터 꺼낸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대뜸 ‘내 아들이지만 구제불능’이라며 ‘얘랑 같이 살다간 내가 미쳐 버릴 것’이라는 말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정 교수는 일단 아이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낸 뒤 어머니와 대화를 했다. 어머니가 들려준 사연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별난 편이었지만 “사내 아이라 그러려니…”하며 지나쳤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어머니는 수시로 학교에 불려갔다고 한다.

좋은 말로 타일러도 아이는 못 들은 척하고 다그치면 번번이 말대꾸만 했다. 남편의 힘을 빌린 날엔 여지없이 아이가 자기 방에 들어가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동을 했다. 남편은 “전업주부가 애 버릇 하나 못 가르치고 뭐 했느냐?”라며 아내를 비난했고, 부부 사이도 점차 멀어졌다. 병원엔 반항하는 아이를 때리려던 어머니 손을 아이가 잡고 밀쳐버린 일이 계기가 돼 찾았던 것이다.

정 교수는 우선 어머니에게 아이가 심성이 나빠서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니라 앞쪽 뇌에 이상이 있어 자기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라는 병 때문이라는 설명을 했다. 충동적이고 산만한 행동은 훈육이나 아이의 의지만으로는 고치기 힘들며, 집중력을 증가시키는 메틸페니데이트 계통의 약물 복용과 행동치료로 교정된다는 사실을 이해시켰다. 곧바로 치료가 시작됐고 1년 뒤 보호자는 “애 때문에 지옥 같던 집이 행복한 가정으로 변했다”는 말로 정 교수에게 감사의 표현을 전했다.

마음이 아픈 아이, 두통·수면장애 생겨

정 교수가 가장 관심을 두는 연구 분야도 ADHD다. 최근 환자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노르에피네프린’이란 신경전달물질을 담당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학계의 시선을 끌었다.

정 교수는 기자에게 “성장기 어린이나 청소년은 생각과 행동이 심하게 일탈돼 보여도 치료를 통해 놀라운 변화를 보인다”며 독자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꼭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첫째, 아이가 친구와 교류가 없거나 가족하고도 제대로 대화를 안 하려고 할 땐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혹은 ‘사춘기라 그러려니’ 지나치지 말고 소아청소년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 둘째, 어린이는 정신적 고통을 말로 설명하기보단 짜증 내기, 수면장애, 복통·두통·성적 변화 등의 형태로 표현하니 이런 증상이 반복돼도 아이의 마음 상태를 점검받을 것 등이다. 끝으로 아이가 지속적으로 싫다고 거부하는 일은 절대 시키지 말라고 그는 당부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최정동 기자

정유숙 교수 프로필 

▶1988년: 연세대 의대 졸업

▶1989~1992년: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공의 수료 및 전문의 취득

▶1992~1994년: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임의

▶1994년: 연대 의대 석사학위 취득

▶1994~1996년: 삼성의료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임의

▶1996년~현재: 성균관대 의대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

▶2001년: 아주대 의대 의학박사

▶2002~2004년: 하버드의대 매클린(Mclean) 병원 연수

▶논문: 2010년 SCI 논문인 ‘American Journal of Medical Genetics’지에 실린 ‘Association studies of -3081(A/T) polymorphism of norepinephrine transporter gene with 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in Korean population’외 국내외 논문 35편

권준수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불안하고 우울한 엄마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의사”

“ 말썽꾸러기, 혹은 문제아가 생기면 가장 힘든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잘못에 대한 비난의 화살 역시 어머니에게 쏠리기 마련입니다. 자녀 양육에 1차적인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죠. 아이가 말 안 듣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편·시부모·친정부모 할 것 없이 ‘애 제대로 가르치라’며 어머니를 집중 질타합니다. 하지만 ADHD 같은 뇌의 이상 때문에 말썽꾸러기가 된 아이는 잘 다독이고 교육한다고 문제 행동이 좋아지진 않습니다. 자연 어머니는 몇 년간 아이를 혼내고 달래다 지쳐 결국엔 불안증이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정유숙 교수는 환자뿐 아니라 고통받는 보호자 치료부터 시작하는 의사입니다. 실제 ‘정 교수 상담을 받다가 펑펑 울었다’는 말을 하는 어머니가 많아요. 정 교수가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준 덕분이죠. 어머니의 심정을 공감해 주면서 적극적인 협조를 한다면 아이의 병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정 교수는 환자뿐 아니라 온 가족을 치료하는 전인적인 의사라고 생각됩니다.”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사진)는 정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사유를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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