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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북한서 더 잘 먹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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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이영종 정치부 기자

"북한에서는 굶어죽는다더니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엔 소시지와 계란 반찬에 카레도 나오고, 집에서보다 더 잘 먹었어요."

금강산 관광을 다녀오는 한 초등학생에게 소감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자는 아이의 설명을 듣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강원도 산골의 한 학교에서 단체로 관광을 나선 아이들이 금강산 현지의 현대아산 식당이 제공한 식사를 북한이 준 것으로 잘못 안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교사나 정부, 현대 측 어느 누구도 이런 사정을 설명해 주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아이들을 인솔한 교장선생님의 답은 더 놀라웠다. 그는 "금강산 관광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업자들이 찾아와 '정부에서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서 나서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회생시키겠다며 215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쏟아부은 2002년 가을의 일이다.

이런 금강산 관광보조금을 통일부는 다음달부터 다시 지급하겠다고 한다. 2만명의 학생.교사에게 일인당 17만~48만원까지 모두 4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내세운 이유는 "금강산이 분단 현실 이해와 안보의식 고취에 최적의 학습장"이란 것이다.

하지만 본말이 이만저만 바뀌어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단체로 보낼 학생(1만8500명).교사(1500명) 규모와 지원액수를 미리 정해놓고 여기에 사람 숫자를 맞추겠다는 식이다. 현대아산과 북한에 현금을 건네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십억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인데도 여론 수렴 한번 없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7일 국회 통외통위에 이를 보고했다. 금강산 관광이 18일로 6주년을 맞았지만 청소년들에게 어떤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지에 대해 통일부는 말이 없다. 이런 식으로 금강산을 한번 다녀온다고 분단 현실을 이해하는 비타민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작정 보내고 보자는 식의 정부정책에 걱정이 앞선다.

이영종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