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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윈도] 첨단 무기 vs 19세기 소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7명은 마치 산양처럼 이틀동안이나 계곡과 산등성이를 누볐다.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에 있는 게릴라 사령부의 전투명령을 누리스탄에 있는 야전지휘관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들이 양가죽으로 만든 뗏목을 타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쿠나르의 폭류(暴流)를 건너자 소련군 헬리콥터들이 다가왔다. 헬기는 레이저 유도 로켓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했다.

무자헤딘들은 잽싸게 동굴에 숨었다. 턱수염을 기른 40대 중반의 병사가 동굴 입구에 쪼그리고 앉더니 헬기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탕' 한번에 한발씩이었다.

헬기는 날아가고 병사가 동굴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의 총을 봤다. '1878제 빅토리아 레지나' -. 영국총이었다. 아마도 병사의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가 산악전투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영국군 병사에게서 빼앗은 것일테다. "

이 경험담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종군기자로 아프가니스탄 반군과 한달동안 생활했던 소설가 필립 카푸토가 뉴욕 타임스에 실은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앞둔 미국에서는 요즘 무자헤딘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전쟁 개시가 계속 늦춰지자 미 국민은 이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작전의 어려움이라는 것을 다 안다. 험준한 고산, 혹독한 날씨, 수많은 동굴 은신처….

악조건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 미국인에게 가장 회자되는 것은 소련 특수부대원들도 진저리를 쳤다는 무자헤딘의 정체다.

TV 화면에 보이는 무자헤딘의 외모는 1, 2차 세계대전 군인만도 못하다. 군복도 군화도 철모도 방탄조끼도 없다. 총알을 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몇대 있다는 미그기나 탱크도 미군의 공습 아래선 고철이다.

반면 미군은 21세기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 크루즈 미사일 말고도 적의 시력을 마비시키는 고섬광탄, 적의 내장(內臟)을 부수는 저주파 발생기, 벙커 속 적군을 죽이는 중성자탄 얘기까지 나온다.

미 특수부대는 고성능 방탄조끼를 입고 야간 적외선 투시경을 쓴다. 중세(中世) 무자헤딘 대 21세기 슈퍼 미군-. 그래도 미국인은 무자헤딘이 두렵다.

머리가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되면 수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자헤딘은 21세기의 수수께끼로 등장하고 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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