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무력감만 남긴 한탄강댐 조정회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지난 11월 2일 지속가능발전위원회(지속위)의 한탄강댐 갈등조정소위(조정소위)는 '한탄강댐 계획'의 중재안으로 '한탄강댐은 무효화하되, 공동협의회를 구성해 홍수조절댐을 1년 내에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5월 시작한 이래 주 8시간씩 150시간의 회의를 하고서도 서로 합의하지 못한 찬반 주민과 정부, 그리고 환경단체들을 대신해 조정소위가 2개월을 더 고민해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두고 언론들은 대체로 '무효화'로 해석했고, 또 어떤 분들은 '1년 후 추진'으로 읽었다. 반대 주민들은 사실상의 강행이라고 반발했으며, 정부는 공동협의가 가능하겠느냐며 불만을 보였다. 따라서 한탄강댐과 관련한 논란은 문구의 해석과 공동협의체의 운영을 두고 계속될 것이며, 최종 합의는 1년 후로 미뤄지게 되었다.

5년의 해묵은 갈등을 대화로 풀어보자는 시도와 참여자들의 인내는 소중한 경험이 됐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분들은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 능력의 부족을 안타까워하고, 조정 과정에 참여했던 분들 역시 무기력에 빠지게 됐다.

이에 필자는 환경단체를 대표해 참여했던 주체로서, 앞으로 유사한 노력들에 보탬이 되고자 조정회의에 대해 느낀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조정소위가 모호하게 뭉뚱그려진 제안을 하게 된 것은 사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 때문이었다.'한탄강댐의 효용'과 '비용'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정부와 찬반 주민, 그리고 환경단체 모두에 서운하지 않은 중재를 하려고 했다. 따라서 조정소위는 각자의 주장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각 세력들의 처지와 요구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더구나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균형을 맞추려 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사업을 추진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버티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속위조차 무리한 사업 추진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포기한 것으로, 비슷한 경우에 있는 다른 개발부서들이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소위 전문가들의 자문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논란이 되는 주요 내용에 대한 검증을 의뢰했다. 예를 들어 찬반 양측이 한탄강댐이나 천변저류지의 홍수조절 효과를 달리 분석하는 것이 논쟁의 시작이므로, 이에 대해 계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계산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관적인 의견을 억지스레 주장했다. 또한 협의 과정에서 제출된 여러 자료를 검토하는 진지함과 성실함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네 주체들의 손을 떠난 후 지속위 조정소위는 투명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고, 중립적이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은 모호한 활동을 통해 헷갈리는 결론을 제시하고 막을 내리는 것으로 역할을 끝냈다.

따라서 이러한 결론을 두고 환경단체들은 의견을 정리하고 뜻을 모으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판결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제안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조정소위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후 협의 과정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지속위의 결정과 절차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제 돌아보면 한탄강댐 조정회의는 가치중립적인 대화 자리가 아니었다. 개발의 폭주가 이루어지는 거리의 한 귀퉁이에 마련된 쇼윈도에 불과했다. 심판을 보겠다는 지속위나 조언을 하겠다는 전문가나 진지하지 않았다. 대화와 타협은 멋진 말이지만, 대화의 방법이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혀 별개다.

어쨌든 정부는 내년 예산에 한탄강댐 건설 예산 65억원을 배정했다. 그나마 형식적인 지속위의 결정은 무시된 것이다. 그리고 성덕댐.화북댐.감천댐.송리원댐.이안천댐.괴산댐 등을 위한 절차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설계를 마치고 건설업자까지 선정하고 나서 그들은 또 대화를 들먹일 것이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 한탄강 갈등조정회의 환경단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