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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 다양한 빛깔로 한가위 관객맞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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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한가위 극장가에 사랑이 넘친다. 가슴을 잔잔히 적시는 서글픈 서정시에서부터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경쾌한 코미디까지 다양한 빛깔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에 푹 빠져보는 데 안성맞춤이다.

액션영화도 빠뜨릴 수 없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일상의 시름을 잊어버리고 화면을 압도하는 시원시원한 액션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추석 연휴에 걸리는 영화 10여편을 출연 배우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 이영애 vs 신은경=올 한국 영화계는 "더도 없이 덜도 없이 늘 오늘만 같아라" 는 한가위의 푸짐함을 만끽했다. 연말께는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까지 올라갈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영애의 '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와 신은경의 '조폭 마누라' (조진규)가 그 여세를 이어간다. 요즘 욱일승천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에너지에 힘입어 올 추석 최고의 맞수로 손꼽힌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극과 극이다. '봄날은 간다' 가 관객의 마음을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사색형이라면 '조폭 마누라' 는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폭발에 승부수를 던지는 행동형이다.

이영애는 '봄날은 간다' 에서 발전했다. 그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 나 '선물' 에 비해 훨씬 원숙해졌다. 연기도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일까. 아니면 '산소 같은 여자' 라는 애칭이 이번 캐릭터와 맞아떨어진 까닭일까. 하여튼 그는 서울에서 내려온 녹음기사(유지태)와 사랑을 나누는 지방 방송사 여PD를 흠잡을 데 없이 능숙하게 소화했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 로 한국 멜로영화의 깊이를 확장시킨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도 여전하다.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이란 평범한 소재를 누구나 공감하도록 술술 엮어가는 솜씨는 우리 영화의 또 다른 재산으로 평가할 만하다. 봄날은 한번 타올랐다가 점차 식어가는 사랑에 대한 은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가을날에 찾아온 봄빛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등판 한가득히 용 문신을 새기고 나오는 '조폭 마누라' 의 신은경도 분명 주목할 인물이다.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자가 온다" 는 홍보 문구처럼 수십명의 졸개를 주무르는 조직폭력단의 2인자인 그의 우먼 파워는 상상을 넘어선다.

그와 동사무소 말단 직원인 어리숙한 남편(박상면) 사이에 빚어지는 폭소극이 주요 내용. 액션.코미디와 멜로를 두루 섞어가며 잠시도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의 성공 요소를 버무린 비빔밥 같은 느낌을 주지만 대중적 흡입력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 정우성 vs 청룽=올 할리우드는 동양식 액션에 열광했다. 진원지는 '와호장룡' 이다. 비행기를 납치하고, 총을 난사하고, 자동차를 전복시키는 식의 화면에 익숙했던 미국인들에게 '와호장룡' 의 유려한 무술은 충격이었다.

지난 7, 21일에 각각 개봉한 '무사' (김성수)와 '러시아워2' (브렛 래트너)가 추석 시즌에 격돌을 벌인다. '무사' 가 할리우드.홍콩과 다른 한국형 사실적 액션을, '러시아워2' 는 청룽(成龍)의 녹슬지 않은 육탄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무사' 는 미국 테러사건으로 주춤했던 흥행의 불씨를 추석을 계기로 되살리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러시아워2' 는 미국에서만 2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린 기세를 한국에서도 이어가려는 태세다.

중국 땅에 떨어진 고려무사 아홉명의 귀향을 다룬 '무사' 에서 정우성은 단연 눈에 띈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칼을 다루는 그의 기예는 오랜 연습의 결과일 것이다. 다른 무사들과 달리 그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줄 정도다.

대규모 화폐 위조단을 검거하는 형사들의 활약상을 다룬 '러시아워2' 의 청룽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액션 스타. 전편에 이어 크리스 터커와 손발을 맞췄다. '와호장룡' 의 장쯔이가 공교롭게도 두 편 모두에 얼굴을 내민다.

◇ 줄리아 로버츠 vs 줄리 앤드루스=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지구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새콤달콤한 사랑의 미로를 그린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가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여배우론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줄리아 로버츠의 '아메리칸 스윗 하트' (조 로스)가 관심거리. 스타를 내세워 영화를 띄우려는 영화사의 상술을 꼬집으면서도 결국은 스타급 배우인 여동생(캐서린 제타 존스)의 남편과 사랑에 골인한다는 줄거리다.

'사운드 오브 뮤직' 의 가정교사로 친숙한 관록파 배우 줄리 앤드루스의 '프린세스 다이어리' (게리 마샬)는 현대판 신데렐라 얘기. 소심하고 털털한 여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작은 왕국의 공주(앤 헤서웨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으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여왕으로 나오는 앤드루스의 탄탄한 연기가 돋보인다.

시간에 쫓겨 사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키아누 리브스)와 자유롭고 활달한 여인(샤를리즈 테론)의 슬픈 인연을 그린 '스위트 노벰버' (팻 오커너)도 가을의 문턱을 두드린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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