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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일상으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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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배반당했다. 서해안의 방어망은 숭숭 뚫렸다. 천안함 침몰 후 군수뇌부가 보인 허둥지둥과 무질서와 보고체계의 난맥상은 과연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군을 지휘·통제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46용사들에게 미안하고 면목 없다. 차라리 싸우다 죽었으면 덜 억울하겠다는 어느 유가족의 비통한 외침은 오래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과 군 수뇌부는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죄인’들이다. 군대를 가지 않은 대통령과 육군 출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2함대 전역이 해군의 3D 지역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3군 중 해군 푸대접을 시정하는 데 한 번이라도 생각이 미친 적이 있는가. 말로는 서해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들, 그리 넓은 해역도 아닌 서해의 바닥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수 있는 지도는 갖고 있는가.

46용사들은 가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애도 기간에 단락을 짓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안함이 남긴 과제가 무겁고 엄중하다. 한 달 이상 계속된 진군나팔 소리, 강경보수 쓰나미, 간간이 들린 친북 좌파들의 볼멘소리 아래서는 합리적·이성적인 대처가 나올 수 없다. 사건 초기 원인을 예단하지 말자는 이성의 소리를 내던 대통령도 결국은 강경보수 쓰나미에 휩쓸린 인상이다. 강경보수 진영에서는 그에게 군사적인 행동을 배제하지 않은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한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한국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를 잡지 못하면 정부가 준비 중인 사건의 유엔 안보리 회부도 벽에 부딪힌다. 그 객관적 증거가 잡힐 것인지, 잡힌다면 언제 잡힐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바로 보자. 북한에 대한 물리적인 보복은 어렵다. 누구보다도 미국과 중국이 반대할 것이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북 국지 충돌을 각오하고 북한에 본때를 보일 군사적인 행동의 여지가 우리에게는 없다. G20 정상회의를 열 번 주최해도 한국이 남북분단의 볼모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외교적으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이명박·후진타오 회담과 5월 말 제주도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압박에 중국의 성의 있는 협력을 구하는 것뿐이다. 이 대통령은 필요하면 국내의 강경 기조를 업고 중국에 책임 있는 역할을 다그쳐야 한다. 북한이 저런 불량국가가 된 데는 중국의 책임이 막중하다.

객관적 증거가 나오지 않아도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황증거가 우리 눈에는 보인다. 그러나 한국 밖은 한국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냉엄하다. 유감스럽지만 천안함 사태는 돌고 돌아서 미국과 중국의 의도대로 6자회담 재개 논의로 어물쩍 넘어갈 공산이 크다. 중국은 지금 남북관계의 악화로 경제적인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챙긴다. 미국이 북한 어뢰나 기뢰의 물증을 찾는 데 적극적인 것은 북한이 그런 해상 테러 수단을 가졌다면 이란과 다른 테러집단에 수출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걸프 해역과 인도양의 해군 전략을 재검토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이해가 갈린다.

한국이 취할 행동반경은 답답할 만큼 제한되었다. 보복 공격론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대통령은 강경론과 확실한 선을 그어야 한다. 지금은 남북관계 올스톱, 대북정책 부재다. 그래서 대북 지렛대가 없다.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왔을 경우와 정황증거만 있고 물증이 오리무중일 경우 이명박 정부 남은 임기 동안 핵을 포함한 북한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은 남북문제인 동시에 국가 간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동북아 정치문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