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 대전] 의인 60대 경비대장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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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1일 미 세계무역센터의 항공기 돌진테러 당시 혼란과 공포의 와중에서 차분히 사람들의 대피를 도와준 뒤 목숨을 잃은 의인(義人)의 사연이 뒤늦게 공개됐다.

주인공은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 입주사인 '모건 스탠리 딘 위터' 의 경비대장 릭 레스콜라(62.사진).

이날 오전 8시45분 그는 WTC 북쪽 빌딩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즉각 직원 대피령을 발동했다.

9시5분쯤 4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을 비상계단으로 이동시키고 있을 때였다. "쿵" 소리와 함께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비상계단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울부짖는 사람과 계단을 뛰어내리는 사람들. 그는 확성기를 꺼내들고 비상계단 중앙에 버텨 서서 강하게 말했다.

"침착합시다. 절대 뛰지 마세요. 노약자는 먼저 대피시키세요. 울지 말고. " 그는 "함께 '신이여 아메리카를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 를 부릅시다" 라고 권유한 뒤 선창했다.

이에 사람들이 침착함을 찾았다고 건물에서 탈출한 그의 직장 동료와 생존자들은 전했다. 레스콜라의 비서는 확성기로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비서가 빠져나온 뒤 얼마 안돼 건물은 무너져 내렸다. 빌딩 붕괴를 짐작한 듯 레스콜라는 부인 수전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야.

사랑해" 라는 말을 남겼다. 영국 남서부 콘월주 출신의 레스콜라는 23세 때 미국에 정착했으며 베트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했다. 3년 전 말기 전립선암 선고를 받았음에도 투병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그는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빌딩 경비대장 업무를 시작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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