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비 코미디언 남철·남성남 35년간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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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우정을 성장이 더딘 식물에 비유했다. 수많은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면 결코 그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뜻이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콤비 코미디언 남철(68).남성남(71)씨는 진정한 우정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짝이다. 올해로 산전수전 함께 겪어온 지 35년째. 후배들에게 밀려 TV에선 물러 났지만 지금도 한 달에 보름 이상 지방을 돌며 제2의 청춘을 맞고 있다. 물론 둘이서다.

"노인이라고 점잔만 빼면 되나요. 출연 요청이 들어오 면 지금도 죽기 살기로 합니다. 아마 우리가 나이 먹은 사람 중엔 제일 바쁠 걸요. "

이 명콤비는 지금 한 동네에 살고 있다. 남성남이 8년 전 경기도 퇴촌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하자 남철 가족도 곧 뒤를 따랐다. 서울에서도 10년 이상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부인들도 남편들 못지 않은 콤비다. 남철.남성남이 지방 공연이라도 가면 부인들끼리 목욕.쇼핑을 같이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을 떠올리면 일단 '왔다리 갔다리 춤' 이 연상된다. 두 손을 접시 돌리듯 올리고, '원.투.쓰리' 세 스텝 밟고 돌아서고…. 일본풍이라고 해서 요즘은 '갈거나 말거나' 또는 '헐레벌레' 춤으로 부른다.

35년 전 악극단 시절에 우연히 고안한 이 춤이 둘을 스타로 만들었으며 그후로 한번도 변형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김건모가 자신의 히트곡 '스피드' 에서 이 춤을 원용했을 정도로 안무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그러나 아직 이 춤을 지나간 추억으로 돌리지 않아도 좋다. 두 사람은 지금도 지방 무대를 누비며 녹슬지 않은 '왔다리 갔다리' 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남성남의 경우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데도 관객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니 마음이 숙연해질 뿐이다.

두 사람의 익살은 나이를 모른다. 남철이 "왔다리 갔다리 춤 안무는 내가 했다" 고 주장하자 남성남은 "회의할 때 항상 졸았으면서 뭔 소리냐" 고 받아친다. "극단에서 감찰 역할을 맡아 남찰로 불렸었어요. 그러다 남철이 됐으니 얼마나 이름이 촌스럽노. " (남성남) "앞뒤도 없는 이름이 무슨 할말이 있다고. " (남철)

이들의 대사가 대부분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란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다. 배고프고 춥던 악극단과 서커스단 시절, 두 사람은 애드리브 연기의 진수를 익혔다. 지금은 눈빛만 봐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따로 대본을 준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장르가 그렇듯 코미디계에서도 원로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금도 무대를 지키고 있는 원로로서 후배들의 코미디 세계를 보는 마음은 어떨까.

둘은 후배들이 반짝 아이디어는 있지만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말장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가수는 불렀던 노래를 또 불러도 되지만 코미디언은 한번 선보인 코미디를 다시 못 하는 법. 끊임없이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하고, 화가 나도 관객 앞에선 웃음을 보여야 하는 생활을 수십 년간 해왔지만, 이들은 다음 생애에도 콤비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공생의 삶을 사는 두 원로를 보면 "우정은 기쁨을 두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 는 옛말이 떠오른다.

이상복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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