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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용 계기판, 마사지 시트 …‘실버 카’ 개발 속도 붙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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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일본 닛산의 차량 디자인 개발자가 노약자 시뮬레이션 의상을 입고 차량을 조작하고 있다(왼쪽). 지난해 출시한 기아 오피러스는 운전자의 등과 허리 건강을 보호하는 마사지 시트를 채택했다. [닛산·기아차 제공]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5%에 달해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자동차업체들이 일찌감치 인체공학적 연구에 나섰다. 닛산이 2008년부터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노약자 시뮬레이션 의상’(aging suit)은 이런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닛산의 차량 디자인 개발자들은 앞이 잘 보이지 않도록 하는 안경과 움직임을 제한하는 특수 신발을 착용하고, 팔·다리·목에 테이핑까지 한 뒤 차량을 조작해 보고 있다. 노약자가 차량을 이용할 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로 반영된 대표적인 기술이 닛산 차량 계기판에 적용된 특수 글자체다. ‘오픈 타입 글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서체는 시력이 안 좋은 노약자가 숫자를 헷갈리지 않게 디자인했다. 도요타와 미쓰비시도 최근 도쿄 모터쇼 등에서 장애인이 사용하기 편리한 차량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혼다는 여성 구매자가 많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CR-V의 운전석을 대형화해 운전자 피로를 최소화했다. 3세대 CR-V는 차량 높이를 이전 모델보다 30㎜ 정도 낮춰 치마를 입은 여성 운전자도 쉽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했다.

은퇴후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포드사는 ‘3세대 의상’(Third Age Suit)이라고 불리는 시뮬레이션 의상을 이용해 고령 운전자를 위한 설계 연구를 하고 있다. 운전자들의 반복적인 동작을 연구해 버튼 조작이 가장 편하다는 38도 기울기로 대시보드를 개발해 토러스 같은 신차에 적용하기도 했다. GM도 최근 고령 운전자의 시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앞유리 연구에 힘쓰고 있다.

유럽의 볼보는 8명의 여성으로 이뤄진 ‘참조인 그룹’을 구성해 그들의 의견을 차량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신차 볼보 S80 T6 등에 적용된 대시보드는 여성운전자들이 시선을 전방에서 떼지 않고 모든 버튼을 조작할 수 있도록 단순화했다. 폴크스바겐의 고급 세단 페이톤에 적용된 뒷좌석은 척추에 가해지는 무리를 최소화해 독일 척추건강관리협회(AGR)로부터 ‘척추건강 보호제품’이라는 공식 인증을 받았다.

국내 업체들도 ‘웰빙’ 유행에 따라 사용자 친화적인 사양을 적용하고 있다. 기아 오피러스와 르노삼성 뉴SM5의 마사지 시트나 현대 신형 에쿠스의 전동식 에어 요추받침대 등이 대표적이다.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는 운전석에 비행기 조종석과 비슷한 ‘듀얼 콕핏 시트’ 디자인을 적용해 운전자 피로감을 최소화했다.

정환우 무역협회 연구원은 “2030년이 되면 미국의 65세 이상 인구가 지금의 두 배인 70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도 그들을 공략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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