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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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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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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방선거는 여러 점에서 퍼즐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몇 번 투표해야 하며, 어떤 직책을 맡을 사람을 뽑는 것일까? 이 물음을 맞히기도 쉽지 않다. 시·도 교육감, 시·도 교육위원, 시·도 의회의원, 구·시·군 의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 4명에게 1차로 투표하고,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비례대표 시·도 의회의원, 비례대표 구·시·군 의회의원 선출을 위해 다시 4명의 후보자에게 투표해야 한다. 여덟 번의 투표 횟수와 8개의 직책을 모두 안다는 것이 어리둥절할 일이다.

이제 3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판이 잘 서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 면도 있다. 천안함 침몰로 대한민국이 침통함에 잠겨 있는데, 여주 군수는 국회의원에게 2억원 돈 보따리를 건네려다 검거됐다. 당진 군수는 위조 여권으로 중국으로 달아나려다가 지명수배 상태고, 해남 군수는 1억9000만원의 돈다발이 발각돼 감옥에 갈 처지다. 공천 수주용 돈 잔치를 둘러싼 잡음과 인사·허가·납품을 미끼로 부정부패한 지역의원과 단체장의 구속수감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현 4기 지자체장(일반 시장·군수·구청장) 230명 중에서 41%인 94명이 비리나 위법으로 기소됐다. 야바위꾼에 휘둘리는 지방자치인 셈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가치를 폄하(貶下)해서는 안 된다. 서울 중심의 행정체제에서 고사(枯死)해 가던 지방을 회생시킬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중앙독점, 중앙행정 위주, 획일화, 편중성 같은 문제점을 지방분산, 지역행정 위주, 다양화, 균등성으로 대체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시대정신이며 최고의 공공성이다. 특정 지역을 우대하거나 경시한다는 시비에서 벗어나 균형적인 발전과 사회통합에 효율적인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가치도 매우 소중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역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전제로 공간(space)과 장소(place)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공간은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할 비어 있는 낯설고 경쟁하는 냉담한 존재다. 이에 비해 장소는 인간에 의해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는 존재다. 장소에서는 안전과 안정, 애착과 친밀성이 추구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정서적인 유대감,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고유성과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Tuan, 『Space and Place』). 지방선거는 지역을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공존하는 장소로 만드는 지방자치의 궁극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꿈은 함께 꾸어야 현실이 된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현실은 함께 꾸는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무엇보다 50% 내외에 머무르는 투표율(2002년 48.8%, 2006년 51.6%)은 지방선거의 대표성에 회의감이 들게 한다. 미래 정치를 담당할 젊은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더욱 암담하다. 2002년 20대 31.2%, 30대 39.3%, 2006년에는 20대 33.9%, 30대 41.3%를 기록했다. 다른 연령대의 투표율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최선이 아니라 최악(最惡)을 피해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라는 냉소가 있지만 이쯤 되면 정치꾼들의 천국이 되기 십상이다.

지방선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서둘러 공천하는 후보자에 대해 거수기 노릇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국내 정당의 취약성으로 정당을 통한 후보자 평가가 불가능하므로 언론이 후보자와 공약에 대해 비교대조와 시시비비를 통해 유권자의 판단과 참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미디어에 의해 정치가 식민지화됐다는 비판이 있지만 후보자와 직접 접촉하고 공약을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은 국민이 제대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려면 언론의 역할이 막중하다. 후보자의 주장만이 아니라 유권자가 바라는 정책을 선거 과정에 반영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정당 위주의 지방자치와 선거제도도 시민 위주로 확 바꿔야 한다.

시민 없는 선거, 시민이 모르는 후보자를 뽑는 선거는 가짜 풀뿌리 민주주의다. 갈 길은 먼데 서산에 해는 기울어가고, 답답한 일이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