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기대책 급한데 증시 '땜질'만 치중하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미국 테러사태가 터진 지난 11일 이후 정부는 거의 매일 회의를 열고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원칙이 흔들리고 무리하게 주가를 떠받치다 다른 부작용을 낼 수 있는 제2의 증시안정기금 조성과 같은 증시대책이 '검토 수준' 에서 남발됐다.

정작 급한 것은 경기대책인데, 이는 테러 피해와 미국의 보복 정도에 따라 비상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발표로 일관했다.

정부 스스로 2조~3조원 규모의 2차 추경예산 편성 등 재정지출 확대 필요성을 제기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 아직도 구체적인 내용 없이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초에 확정한다는 설명에 머물고 있다.

◇ 경기대책 미룰 여유 없다=테러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국내경제의 회복시기가 늦어지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래서 재정지출 확대와 추가 금리인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테러사태가 터지자 민간.관변연구소가 한 목소리로 경기회복이 더 늦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총액한도대출 확대만 거론하고 재정지출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재경부 관계자는 "솔직히 경기전망을 하기 어려운 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섣불리 재정지출 확대를 거론했다가 정치권의 반발에 부닥칠 수 있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했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달라진 정치환경을 인정하고 야당에 재정지출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하고, 대기업 관련 규제완화 방안을 밝혀야 기업과 투자자의 심리가 안정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와 물가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금리인하가 나중에 물가인상 등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란 걱정도 있지만 경제정책을 하면서 부수적인 것은 포기해야 한다" 면서 "현 상황은 무엇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를 판단해 우선순위를 정할 때" 라고 주장했다.

◇ 뒤따라간 금리인하=콜금리를 0.5%포인트 낮춘 19일 종합주가지수는 1.82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정문건 전무는 "다른 나라가 금리를 내리니까 뒤따라간 측면이 있다" 며 "일본이 10년째 장기 불황을 맞은 요인 중 하나가 일본중앙은행의 대응이 너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란 지적을 새겨야 한다" 고 강조했다.

교보증권 김석중 상무는 "예상보다 큰 폭으로 금리를 인하해 투자심리가 다소 호전된 것으로 보이지만 시기를 좀더 앞당겼더라면 좋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금리가 높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국제유가가 안정되지 않은 판에 자칫 물가 오름세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어설픈 증시대책=대책에 따라 증시의 큰 흐름이 결정났다. 테러 피해의 당사자인 미국의 증시는 나흘 만에 다시 문을 연 17일 7%선의 하락에 그쳤다.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12~14일 6.6% 떨어졌다. 이 기간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15.4%나 하락했다.

지난주 말 이후 정부는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줄 만한 조치는 내놓지 않은 채 설익은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고 발표해 오히려 투자자들을 헷갈리게 한 측면도 있다.

특히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 없이 증시관련 펀드를 조성한다고만 밝혔는데, 인위적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자기 회사 주식을 장중에도 살 수 있도록 한 조치도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우리사주신탁(ESOP)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은 제도를 개선하는 차원이며 이미 시장에 알려진 것으로 단기 대책으로 약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투자분석가는 "18일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면서 주가가 올랐다" 면서 "부실기업 처리 등 시장의 불확실성을 빨리 해소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증시부양 대책" 이라고 강조했다.

송상훈.이희성.정철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