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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무샤라프의 실리 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즘 파키스탄에서는 2개의 K와 OB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국가의 운명이 결딴날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두개의 K란 카슈미르와 카불(아프가니스탄)을 의미하며 O는 오사마 빈 라덴을, B는 조지 부시를 말한다.

이 말은 "적이냐, 친구냐" 를 강요하는 미국과 오랜 친구인 탈레반 정권과의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형국을 맞고 있는 파키스탄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1999년 10월의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대외고립 탈피▶경제회생▶민정이양▶부패척결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쿠데타에 대한 응징을 이유로 미국.유럽.일본이 중단한 대규모 원조와 외교고립 정책의 영향은 대단했다. 이들 대신 중동 및 중국으로부터 매년 40억달러에 달하는 원조가 들어왔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무샤라프는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및 반정부 세력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택했다.

최근의 ▶인도와의 정상회담▶탈레반 정권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민정이양 프로그램의 제시 등은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가 발생했고 무샤라프는 정권을 걸고 미국 지원을 선언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등 교묘한 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모습이나 정치권의 모습이 일면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같은 미묘한 정세가 반영된 때문인 것 같다. 미국 지원을 결정했다지만 파키스탄 군.경은 반미 시위를 막지도 않는다. 또 무샤라프는 연속 나흘째 주요 종파 지도자들 및 지식인들과 회합을 하면서도 대미지원을 딱부러지게 말하고 있지 않다.

대신 회합이 끝나면 어김없이 "미국의 압력을 거부하면 미국.인도.이스라엘 연합군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것" 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미국편에 서면 카슈미르 사태 해결에서 미국이 파키스탄 편을 들것' 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 때문에 인도와 중국이 바빠졌다는 분석이 있다. 무샤라프의 실리추구 도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서남아의 국제정치 역학관계가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김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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