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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의 오! 캐스팅] 1. 하늘의 '별' 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명필름' 의 심재명 대표가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오 캐스팅!' 을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명필름은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등 일련의 히트작을 기획.제작한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영화사입니다.

스타 배우를 둘러싼 캐스팅 전쟁 이야기, 배우와의 인연, 개런티 이야기 등을 담게 됩니다.

내가 대표로 있는 '명필름' 의 초기 시절 이야기이다. 2년간 시나리오 작업을 힘들게 마친 뒤 마지막으로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한데 이게 웬일. 만나는 스타들마다 '못하겠다' 는 답만 보내왔다. 그러다 분명하게 거절의사를 밝히지 않은 배우 J씨를 어렵게 연락해 만날 약속을 하곤 감독과 함께 매니저 사무실로 향했다.

반신반의하는 그를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 고민하면서 1분이라도 늦을세라 한강 다리를 쌩하니 달렸다. 그러나 정작 배우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시쳇말로 바람맞은 것이다. 자리를 주선한 매니저보다, 내가 더 무안해졌다. 함께 간 신인 감독은 배우 얼굴 한번 못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도대체 제작자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망신을 감독과 함께 '더블' 로 당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더 무안한 건, 그 일이 있은 뒤 다시 약속이 잡혀 그 배우를 만나러 갔을 때 일이다. 함께 간 감독은 진지하게 자신의 연출 의도와 캐릭터를 열심히 설명했다. 며칠 후, 매니저로부터 최종적인 거절의 답을 전화 수화기를 통해 들어야 했다.

이후 나는 다른 연기자들을 만나느라 영화 촬영장, 방송국 앞, 극장 앞, 호텔 커피숍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들쑤시고 돌아다녀야 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90년대 초반 빅히트한 로맨틱 코메디를 기획했던 영화사의 당시 캐스팅 담당자들은 목표로 하는 여배우 Y씨를 잡기 위해 방송국 출입을 뻔질나게 했으나 접촉에 실패, 급기야 그녀의 집 앞에서 몇날 몇일을 잠복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그 작전도 실패. 우여곡절 끝에 다른 여배우 H씨를 만나, 그 지난한 캐스팅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캐스팅 전쟁은 과거보다 더 치열하면 치열해졌지 나아진 건 없다. 회유와 애원을 섞어가며 끈질기게 매달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접근해 어르고 달래서 성공하는 인간적인 캐스팅 작전은 다 옛날 이야기다.

매니지먼트 사업이 기업화되고, 제작 시스템이 거대화.전문화되면서 요즘 캐스팅 과정엔 냉정한 비즈니스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다.

물론 아직도 냉정한 비즈니스 한 켠에선 스타를 잡기 위해 촬영장에서 하염없이 죽치고 기다리거나, 전화통을 붙잡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이얼 버튼을 누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동료 제작자가 '점 찍어둔' 모 여배우의 마음을 돌리려고 해외로 떠나는 그녀를 뒤쫓아 공항까지 카레이스 벌이듯 힘겹게 달려가 간발의 차이로 설득에 성공했다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톱스타가 잠이 깨 눈을 떠보니 어떻게 들어왔는지 자신의 침대 머리 맡에 모 캐스팅 담당자가 귀신처럼 홀연히 서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는 서늘한 이야기도 들린다. 오! 스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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