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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엑스포 <중> 진화하는 창산자오 경제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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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확대되고, 통합되는 ‘창산자오’

3월 26일 중국 저장(浙江)성 자싱(嘉興). 상하이에서 1시간30분가량 떨어진 이곳에서 ‘창산자오 경제협의회 10차 시장연석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마친 후 성명이 발표됐다. 16개 도시로 구성됐던 ‘창산자오 경제권’을 22개로 늘린다는 것이었다. 저장성의 진화(金華)·취저우(衢州), 장쑤(江蘇)성의 후이안(淮安)·옌청(鹽城) 등이 새로 ‘창산자오 클럽’에 가입했다. 흥미로운 것은 안후이(安徽)성의 허페이(合肥)와 마안산(馬鞍山)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창산자오 경제권 영역이 안후이성까지 넓어진 것이다.


“중국은 제후(諸侯) 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간에 배타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창산자오 클럽에 끼려는 도시가 늘고 있습니다. 상하이의 성장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상하이의 컨설팅업체인 위안둥(遠東)인베스트먼트 차이전후이(蔡震暉) 총경리의 분석이다. “상하이는 이제 상하이만이 아닌 ‘창산자오 경제’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창산자오 경제권의 요즘 화두는 ‘통합’이다. 상하이 취재를 마치고 닝보(寧波)로 가는 길. 푸둥에서 40분쯤 달리니 무려 36㎞나 되는 해상 다리인 ‘항저우(杭州)만 대교’에 접어든다. 중국이 이 다리를 건설한 이유는 창산자오 경제권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다. 경제권 내 도시를 3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도록 교통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전략이다. 난징(南京)과 상하이는 고속전철이 들어서면서 2시간 생활권이 됐다.

교통뿐 아니다. 엑스포를 계기로 주변 지역 관광지를 연계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경제권 내 도시에서 은행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한 금융 통합도 진행되고 있다.

◆첨단산업에서 임가공 제조업까지

난징대교에서 바라본 양쯔강. 양쯔강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 중부를 관통하는 최고 물류망이다. 멀리 쓰촨성에서 온 화물선들이 강 하류에 형성된 ‘창장 삼각주 도시’로 끊임없이 화물을 실어나르고 있다. [김형수 기자]

또 다른 움직임은 도시별 산업 구조조정이다. 각 도시의 특성에 맞는 산업을 집중 육성하려는 전략이다. 상하이 근교 자딩(嘉定)구에서 지난해 ‘알박기 사건’이 있었다. 한국 제조업체인 S사가 알박기의 주인공. 이 회사는 ‘충분히 보상해 줄 테니 다른 곳으로 공장을 옮기라’는 지방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8개월 동안이나 버텼다. 보상액이 적다는 게 이유였다.

S사가 자딩구에 진출한 것은 2004년. 50무(1무=약 200평)의 공장부지를 574만 위안(당시 환율 계산 약 8억원)에 매입했다. 자딩구 정부가 지난해 이전 보상금으로 제시한 금액은 5000만 위안(약 87억5000만원). 매입액의 10배가량이 되는 액수였다.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S사는 변호사를 선임해 협상에 나섰다. 1월 시작된 협상은 8월에서야 끝났다. 최종 보상액은 7300만 위안(약 127억7500만원). 당초 제시했던 금액보다 약 40억원을 더 받았다.

최원탁 법무법인 대륙 상하이대표는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합리적으로 협상에 임했고, 기업의 입장을 이해했다”며 “이 지역 공무원들은 외국기업이라고 해서 억지로 몰아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딩구가 많은 돈을 들여가며 S사를 이전시켜야 했던 이유가 바로 산업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자딩구 관계자는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제조업은 가급적 내륙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대신 자딩구는 자동차·정보기술(IT) 등을 위주로 한 첨단산업단지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쑤저우(蘇州)-우시(無錫)-난징으로 이어지는 양쯔강변 도시에는 지금 거대한 IT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쑤저우공업원구에만 약 3000개의 외국 IT 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쑤저우 전체로는 반도체·LCD·컴퓨터·통신장비 등과 관련된 국내외 회사가 1만 개 이상 진출해 있다. 왕즈밍(王志明) 쑤저우시 상무국 부국장은 “이 지역은 단순한 ‘세계공장’이 아닌 ‘세계 이노베이션(Innovation)센터’로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창산자오가 IT 업체만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타이저우(泰州)·샤오싱(紹興)·타이저우(臺州) 등 주변 도시는 중국에서 유명한 임가공 제조업 단지다. 이들 도시는 중심부에서 밀려난 임가공 업체를 받아들인다.

상하이에서 기차로 3시간여 만에 도착한 이우(義烏). 범 창산자오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저장성의 수십만 개 임가공 업체가 만든 소상품은 이곳으로 모여 세계로 수출된다. ‘이우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암흑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 크리스마스 트리의 60% 정도가 이곳에서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장유역발전연구원의 쉬창러(徐長樂) 교수는 “첨단산업에서부터 임가공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산업 스펙트럼이 넓다는 게 창산자오 경제의 최대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에는 경제권이 많다.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도쿄경제권, 싱가포르와 말레이반도를 아우르는 말레이경제권, 한국의 수원-인천을 잇는 경인경제권…. 아시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경제권 경쟁’에서 창산자오가 한발 앞서 달리고 있다.

☞◆창산자오(長三角)경제권=창장(長江·양쯔강) 하류에 형성된 삼각주 지역의 경제권을 일컫는 말. 상하이·쑤저우·저장이 대상이다. 면적은 중국 전체의 2.1%, 인구는 10.4%이지만 경제 규모(GDP 기준)는 20%를 넘는다. 지금은 느슨한 형태의 경제권이지만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통합을 강화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구상이다. 베이징-톈진(天津)을 중심으로 한 환발해만경제권, 광둥성 주장(珠江) 하구에 형성된 주장 삼각주 등과 함께 중국 3대 경제권으로 꼽힌다.

◆특별취재팀=한우덕·이종찬 기자, 송창의·정환우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사진 김형수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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