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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국경 현지르포]"아프간 2주 후면 식량 바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토르크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김석환 특파원] "미국이 핵으로 공격한다는데 여기서 그대로 죽을 수는 없다. 제발 보내달라. "

1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2백50여㎞ 떨어진 파키스탄 국경도시 토르크햄. 이곳에서는 며칠째 뜬눈으로 지내며 국경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과 이를 막는 파키스탄 국경수비대간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경 초소 인근에는 미국의 최후통첩 소식을 듣고 파키스탄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1만여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모여 있다.

국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중무장한 파키스탄 군인.경찰이 배치돼 난민의 통과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길목 여기저기에서 접근을 시도하는 외신기자들과 길을 내줄 수 없다는 파키스탄 관리들간의 숨바꼭질과 승강이가 벌어졌다. 이곳만 보면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 같다.

국경에서 65㎞ 정도 떨어진 페샤와르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도 긴장이 감돌기는 마찬가지다. 외신 기자들이 나타나자 몇몇 난민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에게 영광을"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여러 사정으로 조국을 등진 몸이지만 미국의 공격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수천개의 텐트와 황토색 돌벽집들이 벌집 같이 모여 있는 이곳의 난민들은 한결같이 흙먼지를 뒤집어 쓴 초췌한 모습이다. 난민촌에서 만난 무하마드 자비르시(47)는 "꼬박 사흘을 걸어 이곳에 왔지만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소재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사무소에서 만난 한 관리는 "그래도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들은 구호식량이라도 충분히 배급받고 있으니 다행" 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서 활동하다 이틀 전 대피했다는 그는 "국제원조에 의지하는 아프간 국민이 5백만명이나 되는데 비축된 식량은 2주치에 불과하다" 며 "이러다 주민들이 다 굶어 죽지 않을까 걱정된다" 며 한숨을 쉬었다. 아프간으로 들어가던 보리 등 식량 공급이 이미 지난 15일부터 차단됐기 때문이다.

국경 봉쇄 이전에 토르크햄 검문소를 통해 이슬라마바드로 넘어 왔다는 아프간인 밀라잔(35)은 "곧 공습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카불엔 공포감이 번지고 있다" 며 "그러나 파키스탄으로 넘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나같이 이곳에 친지가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뿐"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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