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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 e-메일 인터뷰] '무엇이 자폭 테러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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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본토에 대한 종말론적(Apocalyptical) 테러공격을 목격하면서 갖는 가장 큰 의문은 무엇이, 어떤 힘이, 어떤 신념, 어떤 광기(狂氣)가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죽음으로 돌진하게 만드는가다.

그들의 자기희생으로 천년왕국이 온다한들 거기서 누릴 행복하고 도덕적인 삶은 이미 그들의 몫이 아니지 않은가. 이런 근본적인 의문이 풀리지 않는 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초토로 만들고 오사마 빈 라덴을 폭살한다고 해도 제2, 제3, 제10의 빈 라덴이 나타나 같은 테러를 훨씬 큰 규모로 감행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움직이는 죽음의 충동, 타나토스(Thanatos)의 정체가 궁금해 세계적인 권위자 네 사람에게 급히 e-메일로 의견을 물었다.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이번 테러공격은 특수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치밀하게 계획한 미국 견제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요 『제3의 길』의 저자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주요 브레인의 한 사람인 앤서니 기든스 교수가 감정적으로 격앙된 미국에 신중한 군사행동을 주문하는 것은 흥미롭다고 하겠다.

그는 테러의 근절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이 조지 W 부시 정부로 하여금 앞으로는 오만하지 않고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아닌 외교정책의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기서 우리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영국과 미국의 거리를 실감한다.

제2의 월터 리프먼으로 불리는 윌리엄 파프는 미국인이면서 파리에서 활동한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이 정신병자가 아니라 이상을 좇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테러행위는 미국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의견이 옳다면, 미국의 정책이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고 중동정책의 최대 목표의 하나가 석유 이권을 지키는 것인 이상 미국에 대한 테러가 근절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미국의 심각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가 낳은 거의 유일한 세계 수준의 학자인 필리핀대학의 월든 벨로 교수 역시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에서 테러와 미국에 대한 증오의 원인을 찾는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을 광신주의자로 취급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경고하고, 기든스 교수와 마찬가지로 테러 종식에는 미국의 중동정책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린 어페어스 편집국장에서 지난 3월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언론인 파레드 자카리아는 이번 테러사건을 두개의 상반된 세계관과 가치관의 충돌로 본다.

특히 미국과 서양의 세계화가 전파한 개인 중심의 소비문화가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위협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미국 문화와 문명의 응징에 나서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테러리스트를 타도하자는 쪽으로 흐른다. CBS방송의 앵커 댄 래더 같은 사람은 검은 타이를 매고 방송하고 있을 정도다.

부시 대통령이 빈 라덴을 뉴욕과 워싱턴 테러공격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했지만 아직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은 손에 잡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거기 숨어 있을 빈 라덴을 응징하자는 전쟁열기는 고조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고민은 전쟁을 지지하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고조돼 있는 동안 공격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공격대상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서서히 보복을 위한 공격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의 색출과 테러 근절을 위한 공격이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는 것도 부시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중론은 증폭될 것이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지만 공격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전쟁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게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는 전혀 모른다.

네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앤서니 기든스=영국 사회학자.런던정치경제대학(LSE) 학장

우선 급하고 중요한 것은 테러리스트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아직은 아무 것도 확실한 게 없다. 확실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 속단을 해서는 안된다. 성급한 군사행동은 더욱 안된다.

테러리스트들의 동기가 문제인데 그들의 테러와 유사한 행동이라도 전혀 다른 문화적 상황에서는 아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한 테러와 꼭 같은 자기희생과 헌신이라도 그런 희생과 헌신을 정당화하는 상황에서는 찬양을 받는다.

우리는 정당화되지 않는 전쟁에서라도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용기와 무모함, 헌신과 광신주의는 종이 한 장의 차이다. 그래서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들의 심리적인 동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우리들에게 생소한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심리학적으로 중요하기보다는 사회학적으로 더 중요하다.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은 확실히 21세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때로는 악(惡)에서 선(善)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기대되는 최선의 결과는 국제적인 협력이 강화돼 미국의 부시 정부가 고립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대외정책 수행에 오만한 자세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윌리엄 파프=파리 주재 칼럼니스트

테러리스트들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적인 확신과 기꺼이 순교하겠다는 자세다.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어떤 신념에 헌신하는 사람들과 군인들은 그 신념을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슬람의 경전(經典)인 코란에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순교자들은 바로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내용이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심리상태는 병리(病理)현상이 아니라 아이디얼리즘(이상주의)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지지하는 미국, 그들 자신의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미국을 증오한다. 그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분쇄해 미국의 정책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월든 벨로=필리핀대학 교수

이번 테러리스트들이 비(非)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이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미국이 그런 정책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 철저한 계산 아래 공격목표와 수단을 선택했다. 최대한의 파괴와 최대의 상징성을 고려해 목표물을 선정한 것이다. 아무렇게나 뉴욕의 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을 표적으로, 그리고 두 개의 미국 항공사를 공격수단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도 계산에 넣었다.

만약 미국이 아랍 인민들의 이익과 복지를 미국의 석유 이권과 이스라엘 지지에 종속시키는 지금의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번 일을 꾸민 사람들은 미국이 치를 희생을 더 크게 할 것이다.

미국을 테러공격한 사람들은 테러도 전쟁과 마찬가지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추종자들이다. 그들을 광인(狂人) 취급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실수일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뉴스위크 국제판 편집국장.전 포린 어페어스 편집국장

지난 10년간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로 안정된 세월을 보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세계적인 반감은 거의 포스트모던적이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문화를 걱정하고, 여피족들은 환경을 걱정하고, 일반 소비자들은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된 식품을 걱정한다.

이런 반발의 거품 밑바닥에는 자유세계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낡은 방식의 위협, 원리주의적인 위협, 원색적인 위협이다. 그런 위협은 미국의 정책보다는 미국이라는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들의 반발심리다.

빈 라덴은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줄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글로벌리즘의 세계는 중립적인 삶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 서양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지난 몇십년 또는 몇세기에 걸쳐 채택한 정책과 가치관의 산물이다.

이런 정책은 단순히 돈을 벌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활용하는 정책이 아니었다. 서양은 인간들이 자유롭게 일하고, 여행하고, 무역하고, 종교를 갖고, 단체를 만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세계를 창출했다. 거기서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의 세계관은 심각한 위협을 받는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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