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뉴욕 살리기 '시민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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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연면적이 28만평이었다.

우리 63빌딩보다 면적에서 5.6배, 높이는 1.6배다. 여의도 전체 면적의 3분의1이나 된다.

그 큰 덩치가 무너져내렸으니 맨해튼에는 거대한 '폐허의 산' 이 하나 생긴 셈이다.

아직 집계는 안되지만 그 속에 5천명 가까운 사람이 대부분 숨져 있다.

이런 초유의 참사 현장을 지켜본 느낌 중 하나는 '미국인들의 대처가 참으로 차분하다' 는 것이다. 사건 직후 뉴욕시 당국이 인근 건물 사람들을 내보내 격리시키고 맨해튼 진입 다리와 터널을 모두 막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특히 맨해튼의 관문격인 조지워싱턴 다리는 15분 만에 차단됐다.

신속한 응급 대처의 한 단면이다. 현장 주위에 쳐진 경찰 저지선은 언론의 출입까지 엄격히 통제한다.

선정주의로 이름난 미국 상업방송들도 거기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카메라 기자는 "단 한가지 목적이 있다면 국익을 위해 우리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더 인상적인 건 일반시민들의 태도다. 자원봉사 행렬이 넘치고, 구호물품은 몇시간 만에 필요한 양이 충족됐다. 방송에서 "더 이상 필요없다" 고 반복할 정도다. 헌혈도 첫날 필요량을 넘었다고 한다. 부근 상점들은 "구조에 필요한 물품을 얼마든지 제공하겠다" 는 팻말을 내걸었다. 뉴욕시 당국자들도 "도움은 이젠 그만" 을 외치고 나섰다.

돕겠다는 성의는 물론 감사하지만 처치 곤란한 구호품들이 오히려 생존자 수색 및 정확한 피해산출 등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내건 성조기, 가슴에 단 작은 애도 리본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다. '애도의 날' 인 14일엔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수십~수백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경찰 저지선 주변 철조망에는 추모 리본 수천개가 걸렸다. 노란 리본마다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이 깨알처럼 적혔다.

결코 미국인을 치켜세우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1주일간의 현장 취재는 '국가의 저력은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나온다' 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홍주연 사회부 기자

뉴욕 테러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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