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생뚱맞은 북의 ‘핵보유국 행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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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북한이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기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 20년간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인도·파키스탄처럼 핵보유도 인정받고 대미(對美) 수교도 이루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북한이 핵보유국 행세를 하게 된 데에는 우리 책임도 크지만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한의 1차 핵실험에 직면해 부시 정부는 벌을 주기보다는 정치·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6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급급했다. 특히 핵실험 직후 합의된 6자회담의 2·13합의는 북한에 충분히 오판할 수 있는 소지를 남겼다. 2005년 9·19공동성명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프로그램의 폐기’에서 핵무기란 단어가 사라져 ‘모든 핵프로그램의 폐기’로 바뀌었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의 핵무장을 묵인하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후 북한은 6자회담의 목적은 핵활동 동결과 영변 핵시설의 폐기까지이고, 보유 중인 핵무기는 지역적 차원의 핵군축 회담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해온 것이다.

게다가 1차 핵실험으로 상당한 정치·경제적 급부를 챙긴 북한은 자신과 직접 협상을 하겠다는 미국의 오바마 민주당 정부 출범에 큰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4월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하기 위해 프라하 연설에 나서려는 순간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대포동2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두 달 후엔 2차 핵실험도 단행했다. 이렇게 하면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까지 성사되자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교착상황을 타개하고 제네바합의에 도달했듯이 중대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을 잘못 보았다.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자신의 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북한에 오바마가 타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폭적인 핵감축과 함께 핵보유국의 의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지난 6일 발표된 미국의 ‘핵태세검토보고서’는 핵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는 비핵보유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는 예외라는 점을 명시했다. 또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제재를 지속하고 있고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2012년 한국에서 열리는 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북한의 ‘핵강성대국화’를 막는 결정적 계기가 돼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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