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테러 대전] 부시외교 달라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을 공격한 테러집단은 아직은 "얼굴없는 적" 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배후인물 영순위로 떠오르지만 확인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고민이다. 부시는 당장 상반되는 두 갈래의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하나는 테러리스트와 그 배후 조종자를 빨리 찾아 미국의 힘에 합당한 응징을 가하라는 국내의 강경한 요구다. 다른 하나는 민간인 대상의 테러는 야만적이지만 미국의 대응은 문명사회의 가치를 지키는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우방들의 주문이다.

미국이 당한 테러를 유럽 신문들이 최후의 심판, 종말론적 공격이라 부르고, 미국 언론이 진주만 공격 이래 최악의 사태로 표현하는 것은 부시정부가 사건 자체에 대한 단기적인 대응과 함께 미국의 안전보장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을수 없음을 의미한다.

뉴욕 심장부의 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이 가장 잔인한 테러의 무차별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것은 슈퍼 파워의 막강한 군사력도 얼굴없는 테러리스트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동아시아와 중동과 중남미의 안전에 절대적 기여를 하는 미국이 본토 미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는 부시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이다.

아이러니의 극치는 미사일 방어망이다. 미국이 알래스카와 해외에 가공할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해도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안에서 미국의 여객기를 납치해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만행을 막을 수가 없는 게 확실하다면 미사일 방어망의 앞날은 험난하다.

미사일 방어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불량국가들이 미국을 향해 발사하는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그들이 반입하거나 미국에서 현지조달할 소형의 대량 살상무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번 테러사건은 미사일 방어망 구상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것 같다.

당연히 미국의 대외적인 팽창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예상된다. 한도를 넘으면 고립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는 그런 비판이다.

우방의 안전보다 미국 국민이 미국 안에서 테러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활을 하도록 보장하라는 요구를 어떤 대통령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지금 미국과 세계가 걱정하는 것은 무역센터와 국방부 공격을 모방한 테러의 재발 가능성이다. 그렇다고 미국 같은 개방된 사회에 테러리스트들의 출입을 막는 촘촘한 '그물'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해결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테러리스트들의 불만의 원인을 해결하는 장기대책이다.

이건 일종의 문명충돌이다. 풍요의 절정을 구가하는 문명이빈곤 속에 머물고 있는 문명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무역센터와 국방부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는 억압과 불평등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단기적인 강경일변도의 대응보다는 미국의 글로벌리즘의 속도조절,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완화,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이 문제를 장기적.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